‘장한 어머니상’ 받은 공능교회 정 영 순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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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어머니상’ 받은 공능교회 정 영 순 집사
  • 승인 2004.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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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떠난 14년동안 예수님을 가장으로 섬기며 살아왔죠”

지난 11일 연동교회에서는 새가정 50주년행사와 겸해 모범 가정을 이끌어 온 장한 여성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다. 올해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공능교회 정영순집사는 자신의 수상소식을 듣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남들에게 알려질까 숨기고 살아왔던 십여년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 못내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14년 전 7살짜리 아들과 6개월된 젖먹이를 두고 집을 나간 남편, 그 뒤 이어진 시부모의 핍박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버텼던 시간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형식적인 순탄한 신앙을 버리고 눈물로 참회하길 여러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정영순집사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 새롭게 변화되어 있었다.

1990년 어느날, 평온했던 일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집을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직장에 알아봤더니 이미 회사도 그만두었다고 했다. 한 시간의 기다림은 하루를 지나 일주일,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됐다.

아이에게 먹일 분유도 없었고 쌀도 떨어져 갔다. 젖먹이 아이를 두고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었다. 죽음,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하나뿐인 외아들이 집을 나갔다는 시부모의 원망이 계속됐다. 부모님도 없는 친정에서는 아이들을 버려두고 혼자 돌아오라고 유혹했다. 먹고살기 위해 자식을 버릴 것인가. 그냥 남아 핍박과 배고픔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살을 생각하기 여러 차례. 그러나 그녀를 붙잡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태중에서부터 그녀를 지켜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새벽기도를 하고 기도원에 갔죠. 그동안 한번도 신앙을 의심한 적이 없었는데 껍데기만 있는 신앙이었더군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살게 해달라고 매달렸죠. 야곱이 하나님을 찾듯, 하갈이 광야에서 기도하듯 저 또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기도는 그녀의 숨통을 트여주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백성에게 만나를 주셨던 것처럼 하루하루 먹거리가 해결되었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교만한 자신이 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찍이 컴퓨터 전산회사에서 근무했던 경력은 그녀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기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정집사는 가장 먼저 시부모를 돌보기 시작했다. 불교신자였던 시부모는 남편의 가출직전 며느리의 전도로 교회에 등록했었다. 그러나 남편이 집을 떠난 이후로 시험에 빠져 하나님이 내게 무슨 필요가 있냐고 핍박하고 나섰다. “자녀의 축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데 축복받을 아들이 연락도 없는 상황에서 무슨 하나님이냐?”며 원망했다. 그녀는 시부모를 다시 하나님 앞으로 전도하는 일에 주력했다. 아들이 집을 나간 사실을 부끄러워하신 시어머니는 교회를 옮기자고 했고 그렇게 옮긴 곳이 지금의 공능교회다. 끝끝내 교회를 외면하셨던 시아버지를 위해 정집사는 매일 밤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작정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 입술을 통해 전도하는 것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입술을 통해 아버님이 구원받도록 인도해주세요.”

시부모를 찾아가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결국 시어머니의 권사 임직식에 참석한 시아버지는 건강할 때 하나님을 믿게 됐다.

정집사가 매일같이 하는 기도는 남편에 대한 기도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가 아내의 자격이 충분히 되었을 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14년째 전화한 통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는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다. 아이들조차도 엄마가 재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만 정집사에게 남편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남편의 가출은 제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만 알았고 이웃을 생각할 줄 몰랐죠. 제 자신이 깨어지고 변화되고 나니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생기더군요.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사랑하고 가치를 깨닫게 되었어요. 자격이 되었다고 판단될 때 하나님이 남편을 보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늦었지만 그 때에야 진정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겠죠.”

그래도 마음속에 아픔이 없으랴. 정집사는 찬송가 가사중에 “돌아오라”는 가사가 들어간 찬송을 부를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한다. ‘어서 돌아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이 주 떠난 죄인을 기다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오버랩되면 그녀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린다.

아빠를 한번도 불러본 적 없는 둘째딸 은혜는 그늘 하나 없이 밝게 잘 성장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부재가 알려지는 것이 싫어 엄마 정영순집사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도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의 빈자리는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두 아이들 모두 잘 자라나고 있다. 아들은 엄마의 뒤를 이어 컴퓨터분야의 전문가를 꿈꾸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고 중3이 된 딸아이도 좋은 교우관계와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그 비결 역시 기도의 힘이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깨우는 기상소리는 어머니의 기도다. 머리맡에서 축복기도를 하고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시작되었어”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듣고 일어나 등교를 준비한다. 등교전에는 반드시 성경을 읽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결석은 허락되지 않는다. 아들이 고3 수험생일 때에도 공부를 핑계로 예배를 거르는 일은 용서되지 않았다. 한번은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아들에게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대예배를 드리는 것은 앞으로 계속할 수 있지만 고등부 시절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단다.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이야”라며 어깨를 다독이면 아들은 엄마의 뜻을 쉽게 이해하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밝게 자란 아이들을 보고 아무도 편모슬하에서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14년전 가장을 잃어버린 그날부터 가장이 되어주신 하나님이 시간 시간을 지배하셨고 아이들을 키워주셨다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다.

새가정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 추천에는 시부모를 전도하고 아이들을 신앙안에서 양육하며 자기계발에 힘쓰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능교회 김대식목사는 모든 면에서 일치한 정집사를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고 컴퓨터 강사로 활동하면서 강북구청의 장애인 방문교육에 참여하며 중증장애인들에게 새 삶을 찾아주고 있다. 또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주변 아파트의 노인성도들을 극진히 돌보기로 소문난 일꾼이다.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성심을 다하고 있는 크리스천으로 두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시부모를 알뜰히 섬기는 정집사의 모습은 장한 어머니로 손색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다하던 정집사는 자신의 간증이 하나의 계기가 되길 기도하고 있다. “언론매체에 나오는 것을 꺼렸는데 결국 이렇게 나오는걸 보면 혹시 이런 글들을 보고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14년전 그 날처럼 남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길 소망하고 있어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음을 믿어요.”

그녀는 구체적인 기도를 통해 응답을 얻는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께 일일이 구한다. 기도를 하면 늘 더 좋은 결과를 주신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도 변함이 없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간증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그녀를 장한 며느리로, 장한 어머니로 세워놓은 힘이었다.

이현주기자(lhj@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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