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종교개혁자, 한국교회를 향해 무엇을 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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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종교개혁자, 한국교회를 향해 무엇을 말하고 있나?
  • 안인섭 교수
  • 승인 2019.10.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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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서 시작된 종교개혁, 츠빙글리 설교가 기폭제
“분열하면 미래 없다…위기극복은 회개에서 찾아야”
“교회와 시민사회, 그리스도의 왕국을 매개로 통합”

10월 마지막 주는 한국교회가 함께 종교개혁 기념주간으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올해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개혁주의 신학의 기반을 조성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500주년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기념주간을 맞이하며 감추어진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를 조명하면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정신이 지금 한국교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문 신학자의 시선에서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마부르크 종교회의에서 만난 루터와 츠빙글리, Christian Karl August Noack, 1867년 작.
마부르크 종교회의에서 만난 루터와 츠빙글리, Christian Karl August Noack, 1867년 작.

1. 왜 츠빙글리 종교개혁 500주년인가?

지난 2009년은 칼빈 탄생 500주년이었다. 2017년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 많은 행사들을 통해서 더 발전하고 더 성숙했을까? 정말 종교개혁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 오늘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위상은 어떤가?

여기에 대해서 자신 있게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올해 2019년은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는 해다. 대부분의 개신교 흐름의 뿌리가 되는 개혁교회의 종교개혁이 151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때 칼빈은 아직 10살의 소년이었다.

츠빙글리 500주년. 이 또한 하나의 연례적인 행사로 생각하고 넘어갈 것인가? 만약 한국 교회가 그 의미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면 이것은 한국교회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소중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츠빙글리는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따르는 시민들의 삶과 스위스 연방과 사회의 현실적인 상황을 향해서 중요한 가르침을 제공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와 사회를 향해서 주는 교훈이 다른 어떤 종교개혁자보다 크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종교개혁이라고 하면 루터나 칼빈의 이름만을 들어봤던 한국교회에게 진정한 개혁적 교회와 신학의 모델을 제시했던 츠빙글리의 중요성은 더 크다.

 

2.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핵심 : 성경의 권위 재발견

종교개혁 직전의 스위스 교회는 더 이상 개혁이 불가할 정도로 타락한 증후를 보였다. 성도들은 경건한 측면도 많았으나 성직자들의 무지와 미신숭배와 도덕적 타락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또한 스위스 청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주변 국가의 용병으로 나갔으며 이들에 의한 수입 증가와 방탕한 생활 습관은 스위스 교인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런 스위스 연방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 중심부에 있는 취리히의 종교개혁은 츠빙글리라고 하는 한 신학자의 종교적 체험과 열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실제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의 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1519년 1월 1일 마태복음 1장부터 시작한 강해설교(Lectio Continua)였다. 츠빙글리는 취리히를 관할하고 있었던 가톨릭의 콘스탄스 주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경에 근거하여 가열 차게 설교해 나갔다. 취리히 시의회 역시 츠빙글리의 설교를 지지했다. 그 결과 취리히는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하면서 종교개혁 도시로 확고하게 설 수 있었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스위스 연방을 무너뜨리는 인간의 이기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선포할 때 사라질 것이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의 위기와 내외의 도전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 스위스 연방을 방어해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울리히 츠빙글리.
울리히 츠빙글리.

3. 신앙의 자유: 개인에서 사회까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당시에 스위스 연방은 모두 13개의 주로 구성되었다. 스위스는 성경에 근거하여 중세의 신학과 교황권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종교의 자유를 보호는데 사용하기를 싫어하는 제후들 때문에 이들을 지지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로 스위스 사회는 분열되고 말았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이 갈등으로 멸망할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력하게 지적했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이 분열되지 말고 신앙적 갱신과 사회적 개혁을 통해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스위스 연방의 소망은 이기적인 정쟁을 그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함에 있다고 츠빙글리는 강조했다.

결국 츠빙글리에 따르면 스위스 연방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며, 자기중심적으로 분열하면 스위스 연방은 비극적인 미래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츠빙글리의 개인의 신앙의 자유에 대한 신학이 그의 사회 윤리 사상과 만나는 접점이 되었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이 위기를 벗어나서 다시 화해하고 평화롭게 되는 길은 ‘회개’함으로 자기 중심성에서 하나님의 은혜 중심성으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4.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

츠빙글리가 설교와 논문을 통해서 개혁을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개혁의 실제적인 진행은 개혁을 주도하는 시의회에 달려 있었다. 특히 츠빙글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의롭게 된 인간은 동시에 취리히 시에서도 정의를 세우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강조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개혁운동은 사회적인 변혁과 필연적으로 맞물려 있었다.

츠빙글리는 종교개혁 신학이 단지 한 개인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보았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정의는 절대적인 것이라서 인간의 정의로 그것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국가를 통해서 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 질 수 있다면서 이를 위해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런 정신이 츠빙글리의 “하나님의 정의, 인간의 정의”를 관통했다.

츠빙글리에 의하면 종교개혁은 한 개인의 신앙생활 뿐 아니라 교회와 사회와 같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사실상 츠빙글리는 루터와 같이 개인의 칭의에 대한 강조 뿐 아니라, 신자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에 신학적 무게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츠빙글리는 루터보다 국가를 더 긍정적으로 조명했다. 루터와 츠빙글리 모두 교회가 국가와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스위스 개혁주의는 공화정적인 독립 의식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5. 나오는 글

종합적으로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의 역사적 토대 위에서 교회와 시민 사회 두 영역을 그리스도의 왕국을 매개로 통합했다고 할 수 있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중심적이고 대표적인 스위스 종교개혁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의 개혁을 위한 동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뽑아들었다. 그가 공공의 삶의 영역에서 기독교인의 책임을 강조한 의식은 오늘날 현대 국가에도 동일한 무게로 교훈을 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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