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재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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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재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5)
  • 승인 2004.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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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의미와 동떨어진 합동총회 수정 요청안

2. 합동 총회가 개역 한글판의 개정을 요청한 곳 (10곳, 9종)

합동 총회 대책 위원회에서는 구약 3곳, 신약 7곳(6종) 합계 10곳의 개정을 요청하였다.

·창세기 12:19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 뻔하게 하였느냐” (개정요청). “아내를 삼을뻔 하였느냐”라고 번역하도록 요청한 것은 사래가 바로의 아내가 되지 않았음을 은연중에 나타내기 위함인 듯 하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은 애굽의 바로가 이미 사래를 아내로 삼았음을 의미하고 있다(‘라카’의 칼 미래. 1인. 단에 ‘와우’ 계속적 용법, “또 그가 취했다”).

당시 신적 존재처럼 여겨졌던 바로가 일개 이방 유랑인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로 동침하는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문의 뜻은 “왜 너는 그녀를 내 누이라고 말함으로써 내 아내로 삼게 하였느냐?”

·창세기 32:28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 “하나님과 사람들로 더불어 겨루어” (개정 요청). 개정을 요청한 것은 개역의 “사람”이 원문에는 “사람들”(‘아나쉼’의 복수형)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출애굽기 21:11 (이 세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 “이 세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여자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개정요청). 여기에서는 단지 “그”라는 남성 인칭대명사를 “그녀”라는 여성 명칭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물론 문법적으로 엄밀히 따진다면 여성 대명사로 바꾸는 것이 옳다.

그러나 개역성경이나 우리 말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지 않다. 만일 이러한 개정의 요청이라면 바로 앞서 “나로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 뻔하게 하였느냐”에서도 “그를”을 “그녀를”이라고 고치도록 요청해야만 했을 것이다. 개역개정판에서는 “먼저”라는 말이 삽입되고 있는데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누가복음 2:37 (과부된지 팔십 사년이라) → “과부가 되었고 팔십 사세까지” (개정요청). ‘아포’(~부터)와 소유격 ‘에톤’ 앞의 ‘헤오스’(~까지)가 함께 결합되어 있을 때 팔십 사년은 안나의 전체 나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개정판, NIV, NASB, Luther, Elb B, ASV). 그러나 이 햇수는 안나가 과부로 산 전체 기간을 나타낸 것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개역판, Amp B, Mon).

만일 안나가 84년 동안 과부로 살았다면 처녀때(18~23세 정도) 출가하여 남편과 7년 동안 함께 살았던 햇수와 합해 모두 109~114세 정도가 된다. 물론 유딧과 같이 오래 장수한 경우는 있지만 100세 이상을 살았다는 것은 지나치게 무리한 추측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합동총회가 수정을 요청한 것은 원문의 의미와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불분명하다. 원문은 “과부가 되었고 팔십 사세가 되었다”의 뜻.

·요한복음 4:23, 24 (신령과 진정으로) → “성령과 진리로” (개정요청). 원문에는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극소수의 번역(Mof)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Spirit, Geist, esprit)과 진리(truth, Wahrheit, verite)로 번역되고 있다. 원문 성경에서는 영(‘프뉴마’)이라는 말이 성령(Spirit)과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엔 프뉴마티’도 성령이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마 22:43, 엡 2:22, 3:5, 5:18, 6:18, 골 1:8).

따라서 이곳은 합동총회에서 제시한대로 “성령으로”라고 번역해도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어휘적인 의미보다는 신학적인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성령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은 문맥 구조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은 예배의 방식이나 수단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신 그와 교제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높고 깊은 부분인 영으로 예배드려야만 한다. 그리고 ‘알레데이아’는 “진정”이란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부합되는 예수 안에 계시된 진리를 의미한다. 원문의 의미는 개역개정판에 가깝다. “영과 진리로”.

·요한복음 7:10 (비밀히) → “비밀로” (개정요청). “비밀히”와 “비밀로”는 어감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비밀히”는 스스로 비밀히 명절에 올라가신 것이고 “비밀로”는 올라간 것을 비밀로 하라고 당부하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때로는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을 비밀에 부치신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스스로 비밀스럽게 행하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원문 ‘엔 크룹토’는 “비밀로”보다는 “은밀히”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

·에베소서 1:9,10 (…곧 그 기쁘심을 따라…) → “…곧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개정요청). “기쁘심”은 “기쁘다”의 존칭 명사, “기뻐하심”은 “기뻐하다”의 존칭 명사이다. 엄밀히 구별하자면, 기쁘다는 주로 내면적으로 기뻐하는 것을 나타내고, 기뻐하다는 기쁨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행동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는 다같이 ?유도케오?라는 말로 표현된다. 어감적으로는 “기뻐하심”이 더 좋다. 합동총회에서는 “이는”을 첨가해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10절 끝 부분에 “하려 하심이라”가 있으므로 굳이 넣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히브리서 2:16 (실로) → “진정으로” (개정요청). 신약성경에 단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 ‘데푸’라는 말은 “물론”, “확실히”를 나타낸다. “진정으로” 보다는 “확실히”가 더 좋은 번역이다.

고영민/천안대대학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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