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마저 골탕먹이는 대상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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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마저 골탕먹이는 대상포진
  • 송태호 원장
  • 승인 2019.08.27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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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⑫ 행복한 신앙

평소 당뇨가 있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던 50대 남자환자가 아직 약이 남아 병원에 올 때가 아닌데도 병원을 방문하였다. 환자는 내원 전날부터 오른쪽 아랫배가 기분 나쁘게 아팠다. 집에 가지고 있었던 배탈약도 먹었고 배 위에 온 찜질도 하였으나 증상이 조금씩 심해졌다. 병원에서 체크한 혈당은 평소 보다 약간 높은 정도라서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고 설사도 없었으며 진찰대에 환자를 눕혀 진찰해 보니 응급 수술이 필요한 급성 충수 돌기염(급성맹장염)일 가능성도 적었다. 

이렇게 환자의 증상은 심한데 진찰상 특별한 소견이 없어 병명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의사로서는 참 곤혹스럽다. 분명히 환자는 아픈데 왜 아픈지를 모르니 정확한 처방을 내리기 어렵다.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를 해야 하는데 검사를 한다고 모든 원인을 찾으리란 보장도 없고 저절로 낫는 경우도 많기에 초기에 무작정 검사를 하는 것은 낭비일 수도 있다. 

몇 분 동안의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그냥 검사를 해보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역시 쉬운 길이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환자는 오히려 ‘형제들 중 대장암이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검사를 받아 보겠다’고 한다. 환자가 의사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준 꼴이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지만 계면쩍은 표정으로 검사를 위한 의뢰서를 써주었다. 당뇨 때문에 다시 방문한 환자에게 검사결과를 물으니 검사는 모두 정상이었으며 검사 후 배가 아팠던 자리에 수포가 생겨 피부과에서 대상 포진이라 진단 받고 약물 치료 중이며 현재 피부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욱신거림이 남아 있다며 진단이 늦어진 것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대상포진은 수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신경 안에 숨어 있다가 면역이 떨어진다던가 다른 병이 생긴다던가 하여 몸이 약해지면 숨어있던 신경의 분포를 따라 피부에 물집을 만들며 통증을 수반하는 매우 아픈 질병이다. 요즈음에는 과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주된 환자들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이 병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대개의 경우 통증이 먼저 생기며 수일 후에 물집이 생기기 때문인데 다른 병으로 오진하기도 쉽다.

결핵처럼 부위를 가리지 않고 온 몸에 다 나타날 수도 있지만 대개는 한 부위만 생긴다. 그래서 머리 쪽에 생기면 편두통으로 오진하기도 하고 복부에 나타나는 경우 췌장염으로 오진하기도 한다. 대상포진의 치료와 경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 자체의 통증과 합병증이다. 초기에 항바이러스를 포함한 치료를 시작한 경우에는 별 문제 없이 잘 낫지만 물집이 잡히고도 한참이 지나 치료를 시작한 경우에는 피부는 멀쩡해 졌는데도 계속 아팠던 자리가 욱신거리는 신경통 등의 합병증이 잘 생기고 부위가 눈 주위인 경우에는 실명하기도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피부가 멀쩡해졌는데도 계속 아픈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때에 따라선 굉장히 오래도록 환자를 괴롭힐 수도 있다. 약물요법으로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신경절제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대상포진은 생겼던 부위에는 다시 생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다른 부위에는 다시 생길 수도 있다. 

환자들은 의사들에게 전능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의사는 하나님이 아니다. 실수 할 수 있다. 의사라고 보자마자 모든 병을 진단할 수는 없다. 그 중 대상포진은 대표적으로 의사와 환자를 골탕먹이는 병이다. 최근에는 대상포진 예방접종이 나와 50세 이상의 성인에게 접종하면 대상포진의 발병과 합병증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백신의 항체 생성률이 60%정도 밖에 안되지만 합병증 발병을 크게 줄이므로 꼭 접종하는 것이 좋다. 대상포진을 앓은 사람은 거의 재발하므로 반드시 6개월에서 1년 후에 꼭 맞아야 한다.

/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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