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이곳에 있겠습니다”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 홍요한 선교사 한현구 기자l승인2019.07.29 15:45:06l수정2019.08.05 04:07l1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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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를 쓰는 이슬람 국가라니. 쉽게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주인공은 아프리카 서쪽 끝에서 대서양을 품고 있는 나라 세네갈이다.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한두 번쯤 접해봤을 이 낯설고 신기한 나라에서 묵묵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교회를 세운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의 역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과 함께 살며 친구가 되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을 섬기며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흘려보낸다. 홍요한 선교사(48)의 사역은 오늘도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계속되고 있다.

▲ 피부도 삶도 현지인을 닮아가고 있는 홍요한, 김미현 선교사 부부. 이들은 세네갈 주민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20년 만에 지킨 선교 서원
홍요한 목사가 선교사로 헌신하겠단 마음을 품은 건 혈기 왕성했던 20대 초반이었다. 1994년 한양대에서 열린 선교한국대회, 은혜로 충만했던 그는 선교사로 복음 들고 떠나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했다. 하지만 타올랐던 불은 바쁜 일상 앞에 금방 잊혀졌다.

그렇게 선교사로 서원한 지 약 10년이 지났다. 2003년 우연한 기회에 DTS 제자훈련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됐고 온누리교회에서 실시하는 선교훈련 JDS도 잊었던 선교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10년 전 서원할 때의 뜨거움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했다. 은혜로 가득 찬 빛나는 눈빛으로 아내에게 선교 가자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미쳤냐?”

“사실 당시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첫째 아이도 어렸었어요. 아내는 집안에서 힘들었는데 저만 밖에 나가서 선교훈련을 받고 열정이 넘쳐서 들떠있었던 거죠. 그때 아내의 반응을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선교의 길은 아닌가보다 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나님의 때는 따로 있었다. 2013년 아내도 JDS 훈련을 받고 선교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전해왔다. 네팔과 터키로 아웃리치를 다니며 선교지를 직접 밟고 돌아오자 흔들렸던 마음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었다. 부부가 선교에 대한 동일한 마음을 품기까지 꼬박 10년, 선교사로 서원한 이후로는 꼬박 20년이 걸렸다.
가족이 모두 선교사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가 그 다음 과제였다. 세상은 넓고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도 많았다. 홍 선교사는 어떻게 지구 반대편 세네갈까지 가게된 걸까.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어요. 제가 아는 선교사님 한 분이 세네갈로 먼저 가시게 됐고 그 분을 통해서, 또 여러 통로로 세네갈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몰랐을 낯선 나라가 귀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마침 ‘더 멋진 세상’이라는 기독교 NGO가 세네갈에서 함께 사역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 오더군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땅에 가며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이질적인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탐사를 통해 처음 접한 세네갈은 고향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함께 갔던 가족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 ‘더멋진세상’을 통해 께르발라 주민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는 홍요한 선교사.

아이들이 미래라는 믿음
세네갈은 한반도와 비슷한 넓이의 영토에 1600만여 명의 인구가 산다. 17~18세기부터 서양 열강들의 침략이 시작됐고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인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여전히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쓴고 왈로프어 등 50여 종족언어를 함께 쓴다. 코트디부아르와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과 함께 불어를 쓰는 이슬람 국가 ‘프랑코포니아’에 속한다.

다만 세네갈의 이슬람은 중동 지역의 정통 이슬람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아프리카 고유의 토착 신앙과 민족정서가 이슬람과 결합한 모습을 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톨릭과 토착 샤머니즘이 뒤섞인 형태를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또 이곳에선 ‘마라부’라고 불리는 종교지도자가 마호매트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진다.

홍요한 선교사 가족이 세네갈에서 자리 잡은 곳은 본나바 마을. 이곳은 원래 ‘바’라는 성을 가진 일족의 집성촌이었다. 처음엔 고립된 사막마을이었지만 땅이 싸다보니 여기저기서 어려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홍 선교사가 이곳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역은 다름 아닌 교육이다.

“세네갈은 70년대 우리나라 같은 느낌이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닮은 면모도 많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모습 중 하나는 뜨거운 교육열입니다. 교육열이 뜨거운 이유도 우리나라와 비슷해요. 국토에 자원이 나지 않기 때문에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는 길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본나바 께르발라 학교는 원래 ‘갈대학교’라고 불렸다. 제대로 된 건물이 없이 싸리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놓은 교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요한 선교사와 ‘더 멋진 세상’이 두산중공업과 한 독지가의 후원으로 학교 건물을 짓자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갈대학교 시절 30명 안팎이었던 학생들은 이제 500명에 육박한다.

홍요한 선교사의 아내 김미현 선교사는 미술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아이들에게 미술과목을 가르친다. 홍요한 선교사도 단기선교팀과 함께 영어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접촉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보다는 더 말랑말랑하다.

“어른들에게는 이슬람이 삶이고 문화이고 생활습관이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마음이 많이 열려 있어요. 그래서 특히 아이들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집중하며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한 아이들이 나중에 이 나라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어요.”

한 영혼을 바라보는 선교
그래도 세네갈은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무난히 입국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쉽게 열리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는 것으로까지 취급받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예수님에 대해 전하면 자기들도 예수를 알고 믿는다고 해요. 이슬람에도 예수가 등장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수가 단순히 선지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유일한 길이요 진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홍요한 선교사는 이들과 친구가 되려한다. 어떻게든 전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친구인 척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들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울며 웃을 수 있는 친구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생을 이웃들과 함께 살면서 조금씩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삶으로 나타내고 싶다는 것.

“여기 사람들도 외부인에 대한 상처와 불신이 많습니다. 가끔씩 구호활동을 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돈만 좀 쓸 뿐 금방 떠나버렸거든요. 그래도 저희 가족은 이들과 계속 이웃으로 함께 사니까 신뢰를 얻은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이 기독교인인 것은 마을 주민 모두가 알지만 언제나 친근하게 ‘무슈 홍(미스터 홍) 항상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세요.”

지금은 NGO인 ‘더 멋진 세상’, 그리고 코이카와 함께 일하며 여러 가지 마을 개발 사업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비교적 쉽게 얻었지만 홍요한 선교사는 벌써 그 이후를 고민하고 있다. 큰돈이 투자되는 사업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고, 돈이 끊긴다고 해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 먼 훗날 이곳을 떠날 때 수많은 사업을 벌인 NGO 활동가로 기억되기보다는 단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땀과 눈물을 쏟은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얼마 전 홍요한 선교사는 세네갈에서 25년 동안 사역하고 은퇴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브라질 선교사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 브라질 선교사는 25년의 사역 동안 단 2명의 진정한 제자를 낳았다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누군가에게는 25년이란 세월에 비해 2명이라는 숫자가 초라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세네갈에서 선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이다.

“저도 그 삶을 닮고 싶어요. 단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눈물 흘리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곳 서부 아프리카는 미개척의 땅이에요. 거리도 멀고 프랑스어와 부족어를 쓰는 낯선 곳이죠. 하지만 여기도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있는 땅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곳을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땅 속에 있던 대나무가 어느 순간 비온 뒤 깜짝 놀랄 만큼 자라듯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한현구 기자  hhg@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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