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은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 따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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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은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 따르는 것
  • 임석순 목사
  • 승인 2019.04.16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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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진정한 부흥

‘부흥’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지금 한국교회와 성도는 어떤 ‘부흥’을 갈망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 ‘부흥’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며 진정한 부흥을 위해 바르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 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 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하박국 3장 2절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부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말씀입 니다. 그래서인지 부흥을 사모하는 기도회나 집회에서 이 말씀을 자주 사용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나타내고 있는 ‘부흥’의 의미가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합1:2)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하여 “왜 택한 백성을 괴롭게 하십니까?”라고 불평의 기도를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너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을 행하겠다”(합1:5)고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일은 갈대아 사람 곧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짓밟겠다는 것입니다.(합1:6,7)

하박국이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 서는 하박국의 요청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박국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합3:16)

이스라엘의 패망을 알게 된 하박국은 떨렸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환난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을 기다리는 것은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부흥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나님 아버지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다 망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올 것을 알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교회도 빨리 이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3:19)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패망의 상황에 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에 맞춰 사슴처럼 힘 있게 뛰며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자녀라면 이 세상에서도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흥’에 대해 기도할 때 양적으로 늘어나고, 지금보다 더 잘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부흥은 결코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부흥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세상에서는 끝났지만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순종하신 그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아버지의 뜻이 나로부터 이뤄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속히 이를 갈망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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