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은인' 스코필드와 손정도 목사 업적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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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은인' 스코필드와 손정도 목사 업적 재조명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2.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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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3일 새사람교회에서 '토크콘서트' 개최
▲ 스코필드 박사.

3.1운동 백주년을 맞아 한국독립의 은인 스코필드 박사와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를 조명하는 행사가 열린다.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회장:이항, 이하 기념사업회)는 오는 3일 새사람교회(담임:김상기 목사)에서 ‘손정도-스코필드 토크콘서트’를 연다. 

토크콘서트에는 스코필드 박사의 제자 정운찬 정 총리와 손정도 목사의 손자 손명원 장로(새사람교회)가 대담자로 참여하며, 스코필드 박사를 비롯해 한국기독교의 주요 인물과 관련 역사를 정리해 온 키아츠(KIATS) 김재현 원장이 사회자로 나선다. 

기념사업회와 키아츠는 토크콘서트를 통해 스코필드 박사의 생애와 신앙 정신을 일반 성도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김재현 원장은 이번 집회를 통해 “1919년 3.1운동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이 시대의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는 시간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의 독립을 도운 민족대표 34인’ 가운데 한 명이며, 평생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일제의 억압과 만행을 해외에 폭로하고, 해방 후에는 한국의 반부패 운동에 투신했다. 196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고, 1968년에는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사람으로 잘 알려진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4월 12일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오”란 유언을 남기고 영면하여 제2의 고향 한국 국립서울현충원에 외국인 최초로 안장됐다.

▲ 손정도 목사.

손정도 목사는 독립운동가로 3 ·1운동 이전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다. 김철, 김구 등과 의용단을 조직,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흥사단 활동에도 참여하여 1922년 독립운동의 무대를 다시 만주 지린으로 옮겨 국권회복에 진력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으며, 1997년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와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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