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3.1운동 무엇을 기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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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3.1운동 무엇을 기념하고 있나?”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9.01.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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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명예교수, 한목협 열린대화마당서 아쉬움
“3.1운동 이끈 기독교계 일치와 협동정신 배워야”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명 중 기독교인 16명에 대해 하나로 엮은 책 하나가 한국교회에 없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16명에 대한 책을 발간하기 위해 모금했지만 교회의 협조는 전혀 없었다. 한국교회가 과연 3.1운동을 기념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사진)는 지난 18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개최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열린대화마당에서 100년 전 3.1운동 당시 한국 기독교와 신앙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강조하면서 한국교회를 향한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여든을 넘긴 노(老) 학자는 “단순히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동행하자는 차원에서 민족대표를 배출한 교회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되돌아온 답은 없었다”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 연합기관과 교단마다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을 경쟁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또다시 행사 위주에서 그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늦게나마 의미 있는 한국교회 3.1운동 기념사업에 대한 점검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날 강연에서 이 명예교수는 3.1운동이 일어나는 데 기독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객관적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3.1운동 직전 단계에서는 평양의 선우혁과 서울의 이갑성에 의해 기독교 중심의 독자적 독립운동이 준비됐고, 1919년 2월 이승훈 장로에 의해 천도교와 불교가 합류해 거족적 운동으로 확대 발전했다. 3.1운동에 영향을 미친 일본 2.8독립선언 역시 주체는 학우회였지만 실체는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이 명예교수는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독립사상은 민족의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보편적 가치관과 인류공존을 지향하는 비폭력적 평화였다”며 “선언 초안자 최남선은 그 내용이 기독교 이념과 관련됨을 훗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일제가 ‘3.1 소요사건 통계’라며 작성한 50명 이상 만세집회에 대해 집계한 공식 기록을 보면, 전국 218개 군 가운데 212개 군이 참여하고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피검자 46,948명에 달했다. 특히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과정에서 기독교계 참여도 두드러졌다. 이는 감리교와 예장 통합총회가 3년간 연구한 기독교인 구속자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기독교가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유에 대해서 이 명예교수는 기독교계가 3.1운동에 앞서 전국적 연락망을 구축하고 있었던 점, 종교기관만 유일하게 합법적 집회의 자유가 있었던 점, 항일민족운동의 역사적 흐름을 기독교가 연결시켜온 점, 신앙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한 점,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민족상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점 등을 언급했다. 

3.1운동이 가진 이러한 기독교적 가치를 고려, 우리 사회 일각에서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동조하는 동향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매우 서글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임시정부 헌장 제1조는 항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었고, 이를 근거로 1948년 헌법 제1조가 정립됐다. 헌법에 나타난 3.1운동의 법통을 위축시키는 1948년 건국 주장에 일부 신학교 교수들조차 동조했던 것은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 명예교수는 “한국교회가 3.1운동에서 일치와 협동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장로교와 감리교,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협력했다”면서 “한국교회가 이 시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교회가 협력을 위해 움직이고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확보해 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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