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재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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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재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1)
  • 승인 2004.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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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성경, 보수적 신앙과 신학 유지에 공헌

따사로운 봄볕에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온갖 종류의 살아있는 것들이 활짝 기지개를 펴서 대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마음껏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에는 때 아닌 탄핵 정국이라는 거센 정치 회오리 바람과 함께 지금까지 써오던 개역성경을 재번역해야만 한다는 뜨거운 목소리가 요원의 불길처럼 한국 교회의 안팎으로 거세게 번져나가고 있다.

얼마 전 교계의 매스컴들은 성경공회가 그동안 34명의 학자들에게 위촉하여 번역한 성경이 금년 9월쯤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의 최대 교단인 장로교 합동 교단에서도 독자적으로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의하고 번역위원들을 위촉하여 본격적인 번역에 착수했다는 공식적인 발표도 있었다.

1. 성경 번역의 문제성

성경은 대한성서공회와 같은 어떤 단체만이 번역할 수 있는 특정한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개인은 물론 개교회나 교단 혹은 선교단체도 얼마든지 번역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번역의 동기가 과연 무엇이며 현행 개역성경보다 더 나은 번역을 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대한성서공회는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인의 어법에 맞는 새 성경 번역을 위해 몇 차례의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개신교 신학자들이 4년 반에 걸쳐 번역했다는 새번역(1967), 신구 교파가 합동으로 8년 동안 번역하여 출간한 공동번역(1977), 대한성서공회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했다는 표준새번역(1993)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강단용 성경으로는 사용되지 않았고 현재 천주교 이외에서는 보조 성경 정도로 읽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몇 해 전에는 모출판사의 주도 아래 성경공회라는 이름으로 성경번역본(‘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성경’)을 출간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역 내용의 대부분이 개역성경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 대법원으로부터 출판금지 판결 처분을 받아야만 했다(재판 사건 98마 2403).

2.한글 개역 성경의 현주소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강단용으로 사용해 온 개역성경은 1911년에 발간된 ‘성경전서’를 두 차례나 대폭적으로 개정한(1937, 1956) 수정판이며, 명실공히 한국교회의 공식 표준판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왔다. 사실상 한국교회가 오늘날까지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을 유지해 오는데 있어서 개역성경은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입장에 있는 교회나 진보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신학자들도 개역성경을 그 신학과 설교의 본문으로 사용함으로써 성경적 보수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도 특별히 유의해 볼 만한 일이다.

이번 합동총회가 성경을 새롭게 번역하겠다고 나서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지난해에 대한성서공회가 개정한 소위 ‘개역개정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합동교단에서는 이미 지난 88회 정기총회(2003년 9월)시에 개역개정판 대책위원장이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개정판 성경의 내용 중 수정을 요구한 89곳 가운데 77곳은 수정하기로 했으며, 더 이상 개역개정판 성경의 출판을 지연시켜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있었다(보고서 457~462). 총회는 이 보고를 근거로 총회장과 총회임원회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전권을 맡겨 처리하게 하고 1년 간 더 연구하여 총회에 보고하기로 한다”(총회 촬요 49쪽)고 결의했다.

여기에서 ‘연구’의 범위를 위원회가 독자적인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했는지는 모르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독자 성경번역이 합동총회의 전체적인 공식 결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월권이냐, 합법이냐를 놓고 89회 총회에서 심각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되어진다. 그리고 합동교단 목사들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교갱협)’에서는 설문조사(찬성 23%, 반대 74%)를 근거로 삼아 단독 성경 발간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3.성경 재번역의 향후 전망

개역개정판 성경은 개정작업에 착수할 때부터 순조롭지 않았고 결국에는 많은 교단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거기에는 대한성서공회가 보수교단의 신학적인 노선이나 교파적인 입장을 소홀히 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 사료된다.

실제로 대한성서공회는 예장합동 교단에 잘못된 번역이나 오류가 있으면 수정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면서 상당 기간 많은 조율의 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대 교단이 나서서 크게 반발하면 그곳과만 상대하고 교세가 약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군소 교단일 경우에는 아예 관심이나 배려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대한성서공회가 시급히 시정하지 않으면 안될 고질적인 병폐가 아닌가 한다. 어쩌면 125개 군소 교단들이 독자적으로 성경을 번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대한성서공회의 편견적인 오만과 시대착오적인 독선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는 지난 날 찬송가가 각기 개역찬송가, 합동찬송가, 새 찬송가로 나뉘어져 교회 예배나 연합집회 등에서 심각한 혼선과 불편함을 뼈저리게 경험한 적이 있다. 앞으로 각 교단이 독자적인 성경을 발간한다면 머지않아 한국교회에는 극심한 혼란을 빚게 될 것이고 급속히 사분오열되는 비극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게 될 것이다. 만일 성경 번역에 잘못이나 오류가 있다면 함께 모여 서로의 의견들을 모아 수정할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한국교회 안의 모든 교파가 충분히 수긍하고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경을 번역, 출간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독자적인 번역 성경 출간이 이권과 연관되어져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 번역 성경들이 원문의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개역 성경보다도 더 못한 것이라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 하에서 영원히 수치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고영민/천안대 대학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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