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왕이 되고 싶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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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왕이 되고 싶으냐?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8.08.2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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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61

목회의 경륜이 쌓여가면서 어려운 건 ‘말한대로 못 사는 것’이다. 처음엔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리고 ‘은혜’만으로 살자고 했다. 그러나 그런 시작이 수십 년 세월을 관통하면서 문득, 내겐 여전히 성공, 출세, 재물 등에 대한 미련과 욕심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더 높아지지 못한 아쉬움이 불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국 그 흘렸던 열심의 땀과 조그마한 성과에도 자만했던 일들이 결국은 다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날마다 십자가를 붙잡아야 할 이유다. 

원래 ‘유목민’을 의미하던 “Nomad; people without fixed habitation”가 ‘질 들뢰즈(Gille Deleuze)’를 만나면서 철학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고 만들어진 것이 ‘Nomadism’이다. 그의 저서 “천의 고원(Mille plateux)”을 강의의 형식을 사용하여 작가 ‘이진경’이 2002년에 ‘노마디즘’ 이란 제목으로 책을 냈다. 이는 오늘날 너무나 코드화 되어 있는 삶에, 일정하게 사는 곳 없이 항상 떠돌아 다녀야 하는 나그네 유목민의 삶의 모습을 투영하여, 새로운 세상과 앎을 향해 탈출해 보고자 하는 시도를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떠났던 ‘노마드’는 다시 돌고 돌아 옛날의 고착된 영역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철학의 한계를 보여준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란 노랫말로 유명한 가수 ‘최희준’이 세상을 떠났다. 원 제목처럼 ‘하숙생’의 삶을 끝냈다. 물론 그의 사상은 아니다. 그러나 ‘정처’없이 살아야할 ‘유목민’이 어느덧 ‘사회’나 ‘사상’이라는 정착지를 갖게 되면서, 바로 ‘나그네’ 삶의 본질은 끝이 난다. ‘노마드’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곳으로 이 세상을 선택하는 순간 목사도 ‘복음’의 진리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스스로 쳐놓은 욕망의 덫에 걸려 그 안에 갇히게 된다.

만들어짐으로부터의 탈출, 민주주의도 공산사회주의도 모두 거기서 나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피 흘리는 투쟁을 통해, 억압으로 인하여 소외당하는 계층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공산 사회주의’가 재기를 노리지만, 어김없이 그 정점에 있는 선동자들은 전체주의 시대의 왕으로 복귀되어 오히려 계급타파 투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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