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국회 대통령 탄핵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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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국회 대통령 탄핵안 가결
  • 승인 2004.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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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인사들에게 듣는다 “구시대적 대결정치 버리고 상생정치 펼쳐야”

헌정사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3.12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교계의 시각은 거의 대부분 ‘안정’과 ‘화합’에 맞춰져 있다. 교계의 이같은 입장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예민한 부분에 대한 무리한 입장 표명을 절제하는 대신 ‘서로 다른 생각도 포용하라’는 성경적 대원칙을 재확인, 모든 류의 갈등 종식을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3.12 대통령 탄핵 이후 교회의 역할에 대한 교계 지도자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기독교 정당 창당 준비위원장인 김기수목사(안동교회 원로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길자연목사, 총신대 김의원 총장,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김원배 사무총장 등 이 말하는 갈등 정국의 해법은 기독교가 조성하는 ‘대 사회 화합 분위기 실현 여부’에 달려 있었다.

“신앙인 정치개입 절제를”

길자연목사 한기총 대표회장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 공백 없이 신속하게 안정을 만들어 내는 일일 것이다.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고건 국무총리는 공백 위기를 맞은 국정을 아마도 무리없이 안정시킬 것으로 믿는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탄핵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든 기독교계는 엄숙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 가지 예측을 할 수 있겠지만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단을 했을 경우와 합헌 판단을 했을 경우 양쪽 모두 혼란이 예상된다. 조심스런 예측이지만, 위헌 해석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권한을 다시 회복했을지라도 통치력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권한 회복 이후에도 어쩌면 대 사회적인 혼란, 정치적 갈등이 산재할 것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국민적인 혼란을 최소화하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은, 각 나라의 통치권이 하나님의 커다란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고 헌법재판소의 어떤 판단에도 순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나아가 안정적인 화합을 도모하는 기도회를 열어 흩어진 마음과 골 깊게 패인 갈등을 하나로 엮는 일들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기독교 안에서 정치 개입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을 수 있으나 교회란 단지 복음전파를 위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단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 개입 가능한 교회의 영역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너무 지나친 개입은 도리어 교회의 정체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도 있기에 기독교인은 절제하는 마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향한 열정을 표현해야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고백할 것은,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파국을 맞을 때까지 교회가 안일한 자세만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역동적인 모습을 상실한 채 기존의 제도운용에만 편승함으로써 교회의 생명력을 정치권에 파급하는 영향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한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교회로 우뚝서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기성 정치 한계 ‘뚜렷’

김기수목사 기독교 정당 준비위원장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극단으로 치달을 때는 대통령도 탄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타난 단면만으로는 누가 무엇을 잘했느냐는 식의 판단이 어려울 것 같다. 야당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당연한 논리가 있기 때문이고 대통령을 포함한 여당 역시 그들 나름의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이 하는 ‘정치라는 것의 실체’에 대해 스스로 망각하고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정치는 모름지기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민을 떠난 정치로는 그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정치인은 밤이나 낮이나 어디에 있든지 국민의 마음 곁에 있는 정치를 구현해야 할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3.12 탄핵은 그 자체에 대한 해석과는 별개로, 탄핵 사태까지 이어질 정도의 갈등과 부조화에 우리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적인 눈으로 볼 때는 권력을 쥔 쪽을 여당, 권력을 못잡은 쪽을 야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인 눈 혹은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여당 야당은 ‘발전을 위한 부조화의 한 측면’으로 생각 가능하다. 경쟁과 토론을 통해 진일보가 가능하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학자들도 우려했던 대로 다수당의 일방통행식 국회운영이 이번 3.12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구시대적 발상이 21세기 우리나라 국회에서 또 한번 벌어짐으로써 대외적으로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 시기 국민은, 과거 정치이념에 휩쓸려 좌우대립과 보혁갈등을 일으킨 것같은 양상을 재현해서는 않될 것으로 생각한다. 비판받아 마땅한 이번 탄핵사태는, 어쩌면 우리나라의 정치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성숙한 국민의식을 통해 갈등을 조장한 정치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조만간 창당하게 되는 기독교 정당은, 기성 정치계의 이같은 모순들을 철저히 배격하는 데 신경을 쓸 것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원리를 정치계에 적용하는 데 그 어떤 불합리적인 요소라도 포함되지 않도록 사명에 대한 재다짐을 확고히 할 생각이다.

성경적 미래비전 직시해야

김의원박사 총신대학교 총장

단적으로 말하면, 오늘의 이 난국은 무관심의 결과다. 정화에 나서지 않은 한국 국민들의 무관심이 빚은 파국이다. 교회는 이런 점에서 마땅히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민들이 늘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지만 위기대처 능력이랄까, 잠재된 곧은 의식의 기초를 이루는 곳에 교회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까지 국민적인 잠재역량을 만들어주기에는 역부족인 경우를 많이 목도해왔다. 격동의 시기 때마다 갈등의 한 복판에서 중재 역할을 자처하기 보다는 늘 이해관계의 한쪽 편에서 세속그룹의 견해를 옹호하는 기능밖에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격변기 혹은 변혁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여러 분야에서 큰 변화들이 분출되고 있다.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지금 현재에도 똑같은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도전을 주신다. 교회는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미래 청사진을 직시해야 한다. 세상은 자신들이 당면한 이해관계의 눈으로 자신의 미래를 보겠지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원칙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성경의 기록은, 지도자에 대한 철저한 인정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네로와 같은 폭군에 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고 살리는 화합의 미래상을 구현하기 위한 교회의 열정은 과거 3.1운동에서 보여 준 것처럼 지금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도 지적하는 것이지만, 탄핵이후 정국을 더 예민하게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태로 인한 국민간의 충돌현상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일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오늘의 파국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또 한번의 기회로 삼길 기대한다.

또 시작된 ‘힘의 정치’ 유감

김원배목사 한목협 사무총장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 어느 나라도 진통을 겪지않은 곳은 없었다. 정치사 혹은 경제사적으로 큰 획을 그을 정도로 반향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학계에서는 혁명이나 변혁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같은 과정을 겪었다고 모두다 발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발전을 위한 전주곡으로 반드시 이같은 변혁과정을 거치곤 했다. 지금 탄핵사태를 맞은 시국에 굳이‘변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한 시기라는 이유 때문이다.

분명 탄핵된 것은 사실이다. 탄핵이 잘된 것인지 아닌지는 역사가나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이 할 일이지만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 국회에서, 비록 다수당의 횡포라는 역기능에 따른 결과이지만 그 높은 대통령이 탄핵받았다는 것이다. 한 때 대통령을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지던 시절을 회고하면 지금 이 현상은 객관적으로 진일보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아쉽고 우려스러운 것은 탄핵 자체가 갖는 불공평과 불공정성이다. 다수당인 야당이 힘의 논리로 소수 여당을 밀어붙인 것은 민주주의 정신을 짓밟은 극단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목도하면서 교회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하게 됐다. 특별히 민주주의를 만들고 운용하는 인물을 키우는 데 그동안 인색했던 교회의 안목을 깊고 넓게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 이 기간을 잘못 지내면 교회는 정신적인 지도력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속적인 이념에 편승함으로써 상실한 정신적인 리더십을 다시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윤영호기자(yyh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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