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예수님이 내시는 식사 드시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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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예수님이 내시는 식사 드시고 가세요”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8.05.15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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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살아 있는 예배, 길위에교회

종로구 예지동 재개발지역 깊은 골목 안에 위치한 교회
매주 수·금·주일 종묘공원에서 어르신 대상 봉사·예배

▲ 길위에교회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주일이면 오후 2시에 종묘공원을 찾아 어르신들을 위한 찾아가는 예배를 드린다. 박운철 목사는 교회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복음의 핵심이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예지동의 한 상가 골목. 한때 귀금속 전문 매장들이 즐비하게 자리했던 이 곳은 이제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상인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으스스한 기분이 느껴질 만큼 누추한 곳이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석을 사기 위해 오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간판과 굳게 잠긴 셔터만이 호기심에 골목을 찾은 사람들을 이끌 뿐이다.

누가 살고 있기는 할는지 궁금한 마음에 발길을 옮겨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익숙한 찬양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속삭이듯 작은 소리지만 찬양이 분명하다. 소리를 따라 더 깊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니 ‘길위에교회’라고 적힌 간판이 있다. 지금은 예장 대신총회(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 경인한남노회 소속)가 됐지만 구 예장 백석총회 마크도 간판에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교회 문을 열었다. 이 교회를 섬기는 박운철 목사는 낯선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 좋은 얼굴로 교회의 역사와 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

길위에교회는 행정구역상 예지동 옛 금속상가 내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름처럼 ‘길 위’에 존재하는 교회다. 주 사역지는 종로에 위치한 종묘공원. 공원은 교회가 주된 사역 대상으로 섬기고 있는 어르신들로 매일 북적대는 황금어장이다.

교회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일요일 오후 2시에 종묘공원 주차장 인근에서 예배를 드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예배는 계속된다. 예배를 마치면 교회로 함께 이동한다. 그 곳에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교제를 하고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박 목사가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은 7년 전부터다. 뒤늦게 목회를 시작한 그가 처음 사역을 시작한 곳은 이 곳 종묘가 아닌 영등포공원이었다.

“제가 늦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처음 시작한 곳은 영등포공원이었는데 사실은 너무 힘이 들더라고요. 몸이 힘든 게 아니고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노숙인 한 분이 쓰러져있는데 살펴보니 곧 돌아가시겠더라고요. 그래서 경찰도 부르고 119도 불렀는데 이분이 동의를 안 하면 데려갈 수가 없대요.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이분을 데려갈 상황도 못 되고요. 이분이 제게 기도만 해 달래서 해주고는 집으로 왔어요. 그때 제가 도저히 감당할 사역이 아니란 걸 깨닫고 1년 만에 나왔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뛰어든 노숙자 사역에서 쓴맛을 보고 개척을 하려고 구로지역에 작은 교회를 얻어서 준비하고 있는데, 알고 지내던 목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종묘에서 어르신 사역을 하던 양현모 목사였다. 

“여기 종로를 좀 맡아달라는 거예요. 그분이 이 자리에서 6년 반을 사역하셨거든요. 일전에 제가 1년 정도를 도와줬는데 제 생각이 자꾸 나더라는 겁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7년 됐습니다. 봉고차를 한 대 사서 저 혼자 거기에 의자 싣고, 앰프 들고 와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낮은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처음부터 사역이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어르신들은 처음 보는 목회자에게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내하면서 1년 2년 사역을 계속해 나가자 동역자도 생겼고, 어르신들도 마음을 열었다. 종묘 사역이 불어나면서 더욱 집중할 필요성이 생겼고, 구로에 개척했던 교회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 

문제는 예배당이었다. 종묘공원 근처에 예배당을 얻어서 어르신들께 식사도 제대로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세가 워낙 비싸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종로지역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지하에 15평도 안 되는 곳도 알아보니 4천만원 보증금에 170만원 월세를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상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감동이 와서 여기 구석으로 발길이 닿았습니다. 재개발지역에 외진 곳인데 작게 ‘임대’라고 써 붙였더라고요. 부동산에 물어보니 역시 우리랑 조건이 안 맞아요. 포기하고 옆에 구멍가게에 가서 컵라면을 하나 먹으면서 가게 주인한테 ‘여기 어디 얻을 곳 없을까요’하고 물으니 지금의 장소를 소개해주더군요. 사실상 쓰레기 구덩이 같은 곳이었지만 ‘여기다’ 싶었습니다. 마침 건물 주인이 권사님이셔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길 위에서 전하는 복음

박 목사의 설명을 들으니 교회가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얼굴에서는 지금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비싼 월세 대신 어르신들에게 더 많이 대접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역지를 예배당에 한정짓지 않고 철저히 ‘길 위’에서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님도 성전 중심이 아니라 외곽, 열악한 지역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거기서 가난한 이들을 만나셨죠. 제자들을 만난 곳도 다 길 위였습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죠. 우리가 이런 사역을 비싼 월세를 주면서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돈으로 어르신들을 더 섬겨야죠. 그래서 ‘길위에교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박 목사에게는 따로 사례비가 없다. 후원도 사실상 전무하다.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을 통해 들어오는 돈이 사역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7년을 해도 후원을 많이 받아보지 못했어요. 제가 원래 요식업을 했거든요. 집사람이 제가 사역하는걸 보면서 잘 안 되니까 독산동에 작은 식당을 열었어요. 거기에서 나온 돈으로 사역을 하고, 또 제 딸이 얼마를 도와주고 10명 남짓의 지인들이 알음알음 5~10만원씩 도와준 돈으로 사역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예배 시간에 헌금 순서가 따로 없습니다. 어르신들 주머니 사정이 빤하거든요. 십일조 강요도 절대 안하죠. 말도 꺼내본 적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서 도와달라고 해본 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보내주셨으면 책임져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 박운철 목사

복음의 핵심만 전한다

기자가 찾아간 수요일 예배에는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예배장소를 안내하는 배너에는 ‘길위에교회 종로예배처, 예수님이 내시는 식사’라고 적혀 있었다. 설교는 매우 단순하고 명료했다. 먼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소개를 한 뒤 천국에 가려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믿고 고백해야 함이 전해졌다. 구원은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한 번도 안 갔어도 지금 믿으면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설교 막바지에 모든 어르신들에게 설교 내용을 확인하며 따라 읽기를 권한다. 마치 4영리 전도 마지막에 함께 기도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몇몇 어르신들이 작은 소리로 따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 목사는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에 대해 “어떻게 보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라며 “여기서 우리마저 복음을 못 전하면 복음을 만날 기회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것은 안합니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 복음만 전합니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에게 예수님만 붙드시고 마지막 시간 속에서 예수님만 믿고 사시라고 권합니다. 저는 변화나 어떤 삶의 나타남을 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느냐, 예수를 구주로 고백했느냐 그것만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모이신 어르신들이 모두 사역의 열매입니다.”

우리 나이로 65. 결코 적지 않은 나이지만 박 목사는 오늘도 그 열매를 바라보며 종묘로 나간다. 앞으로의 큰 희망을 품기보다는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겠다는 각오다. 지금의 예배당이 언제 재개발이 될지도 알 길이 없다.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실하게 동역해주는 성도들과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주님이 허락하시는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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