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과세 ‘대상’ 늘리고 ‘범위’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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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과세 ‘대상’ 늘리고 ‘범위’ 줄이고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7.11.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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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 1월 1일 시행될 종교인 과세의 부과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대신, 종교인의 활동비를 포괄적으로 인정해 과세소득 항목을 축소할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7일 확정하고 11월 30일자로 입법예고하기로 했다.

기재부 김동연 장관은 “과세 준비가 끝난 만큼 계획했던 대로 종교인 과세는 시행할 것이며, 입법예고 기간 의견수렴과 국무회의에서 의결을 거쳐 12월 말 공포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기재부 고형권 제1차장 등 과세당국자들은 이미 지난 24일 한국교회교단장회의 소속 총회장들과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그동안 종교계가 요구했던 부작용에 대한 보완내용을 담았다고 밝혔다.

시행령 개정안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현재 비영리법인으로 등록된 종교단체 소속 종교인만 과세대상으로 했던 부분을 개정해, 법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종교단체 소속 종교인도 과세하기로 한 점이다. 개신교의 경우 교단 유지재단에 가입돼 있는 교회가 많지 않아 과세대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불교 등 다른 종교도 과세 대상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주목되는 점은 과세대상 소득의 범위를 조정해 종교 활동비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기로 방향을 잡은 사실이다. 기재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종교별 세부과세 기준안에서는 개신교를 제외한 여타 종교의 경우 과세항목이 2~3가지 정도에 불과했지만, 개신교만 30여 가지 과세항목을 담아 종교별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개신교계는 “종교인 과세가 아니라 종교 과세가 될 수 있다”며 “그럴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반발했으며, 불교계에서도 수행지원비 등까지 과세항목에 포함시킨 데 대한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종교인 과세가 종교의 자유권을 침해할 우려로 제기됐던 것 중의 다른 하나는 세무조사 가능성이었다.

소득세법 시행령 부칙조항에 종교인 소득에 관해서만 국세청이 조사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달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조사가 이뤄질 경우 종교인 소득만 분리해서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었다.

이 같은 지적 때문에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종교인 소득’과 ‘종교단체 비용’을 구분해 회계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선언적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기재부는 지난 13일 있었던 교단장 간담회에서는 구분회계의 합법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 답변을 하지 못했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달랐다.

또 교회 내 갈등이나 이단들의 민원성 제보로 무리한 세무조사가 실시될 수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관할 세무서가 탈세제보 시 수정신고를 통한 자기시정을 요구하는 방안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근로소득세 납부자에게 지원되는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을 저소득 종교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종교계 건의에 대해서는 현재 국회에 법안이 상정돼 있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가 부작용 보완대책을 발표한 것에 대해 종교계 안에서는 고무적이라고 하는 평가가 있는 반면, 시행을 눈앞에 두고 보완대책을 내놓은 것은 여전히 과세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더구나 지난 24일 교단장 간담회에서 기재부 관계자는 종교인 과세를 위한 소통을 개신교계 특정 시민단체와만 논의해왔다는 사실을 밝혀, 교단장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총회장은 “종교인 과세를 시행한다면서 주 과세대상 목회자들이 소속된 교단과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당혹감을 넘어 분노했다”며 “이번 보완대책도 교단장들과 만나 대화하면서야 반영될 수 있었던 것은 소통 부족의 증거”라고 비판했다.

내년 1월 1일 시행된다면 종교계에서도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일선 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교육자료가 부족하고, 종교별 특성에 대한 혼란에 대비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교회가 부교역자들의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 납부할 경우, 부교역자들에 대한 처우도 근로자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벽예배나 철야예배에도 수당을 지급할 것을 주장한다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는 적잖은 혼선도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종교인 과세 2년 유예법안의 처리 여부에 따라서는 내년 1월 1일 과세가 어려울 수도 있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현행 종교인 과세제도가 종교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헌법소원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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