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의 문화칼럼]눈물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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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의 문화칼럼]눈물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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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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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태어나 세 번 울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모름지기 이렇게 가르쳐 왔고 이렇게 배웠다. 생리적인 현상인 눈물 흘리는 것이 일생에 몇 번으로 한정될 이야기인가. 언제부터 이런 법칙이 생겼으며 왜 남자에게 적용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남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수치이며 연약함을 보여 주는 것으로 부끄러운 일로 여기게 되는 한국인의 정서가 한몫을 한 것이다. 아니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특히 눈물은 여자의 전유물처럼 생각하거나 남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될 금기처럼 되어버린 것은 감정의 간섭효과 작용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하는데 체면 때문에 울지 못하고 눈물이 필요할 때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있을 때 애써 눈물을 참으며 우는 모습을 감출 필요가 있을까?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제하면 몸 안에 독소가 쌓인다고 한다. 눈물에는 엔돌핀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 물질인 함유되어 있고 눈물은 면역제를 많이 분비하여 암세포를 억제하며 감소시키는 항암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독소를 제거하고 병균을 막아내는 차단효과가 있으며 소화를 원활하게 하여 소화력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눈물은 연약함의 상징인가? 눈물은 신이 내린 치료제이며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것은 복중에 하나이리라. 눈물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치유의 처방전이 되기도 한다.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 라는 노래가 나온다. 한때 유행했던 가요 ‘울 고 싶어라’ 라는 노래가 있다. 어떤 간절한 마음이 울고 싶게 만드는가. 내용은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속에는 이렇게 울고 싶은 감정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울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이제는 눈물을 감추지 말고 살자. 이유야 어떻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자. 회한의 눈물도 좋고 반성의 눈물도 좋다. 감동적인 음악을 들을 때도 좋다. 기쁨에 넘쳐 흘리는 눈물도 좋다. 먼 나라의 아픔까지 나의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나의 눈물중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되었는지 반성해본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의 자녀를 위해 울라! 라고 말씀하셨다.

눈물은 믿는 자들의 누릴 특권이다. 회개의 눈물 용서와 화해의 눈물, 결단의 눈물이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우는 마음이 있다면 더 나아가 함께 울어주며 위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메마른 세상 속에 긍휼의 눈물은 우리들의 마음을 윤택하게 해줄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느껴보는 사색의 계절 가을이다. 나의 마음에 독소를 제거하듯 감정을 순화시키고 이웃의 아픔을 위해 눈물을 흘려도 좋은 계절 이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치료제인 눈물을 흘리는 일에 인색하지 말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5장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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