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섬, 제주도

정성학 목사의 섬 목회 이야기(21) 정성학 목사l승인2017.01.11l수정2017.01.11 09:41l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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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아름다운 풍습 중에, 제주 여인들의 식사 문화가 있습니다. 설명을 드리자면, 한 집에 시부모나 아들, 며느리가 살면서 식사는 따로 해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저희 교회를 떠난 분이라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늘 그를 ‘선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교인들을 ‘아무개 성도님’이나 ‘아무개 집사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아무개 엄마’, ‘아무개 아빠’라고 부르던 때였습니다. 이 선주 엄마가 이혼을 하고 돌아와 아이를 키우며 살던 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가 육지로 시집을 갔는데, 꿈같은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내외가 행복한 아침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앉아 과일이랑 커피를 먹고 있는데 시어머니 인기척이 나더랍니다. “방에 있냐?”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 차린 선주 엄마가 문을 열어 드리니 방에 들어와서 앉으셨습니다. 선주 엄마는 먼저 “어머니, 아침 진지 드셨어요?” 하고 물어보았는데, 놀란 시어머니가 “아니다. 누가 줘야 먹지! 너희는 먹었느냐?” 하고 물어보더랍니다. “그럼요. 우리는 벌써 먹고 아빠는 출근했어요. 지금 커피 마시잖아요. 그런데 밥은 누가 드려요?” “아니, 누가 주기는?”

이렇게 해서 육지로 시집간 선주 엄마와 시어머니의 첫 만남은 시어머니를 빼놓고 먼저 아침을 먹은 며느리와,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을 기다리다 지쳐 건너온 시어머니의 황당환 대화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제서야 선주 엄마는 ‘육지의 며느리들은 아침 식사를 시어머니에게 차려드리고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어머니는 ‘제주 며느리들은 시어미는 안 중에 없고 저희들만 따로 먹는구나’ 하며 또 하나의 제주 풍습에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 풍습은 건강한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이 입장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우선 노인들과 젊은이들의 생활 리듬이 다릅니다. 노인들은 저녁 잡숫고 나면 일찍 시작하는 연속극도 다 못 보고 주무십니다. 지난해 초에 부흥회를 갔던 어느 시골 교회는 예배 시간이 저녁 6시였습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 해는 일찍 지고 저녁을 먹고 나면 6시도 안 되는데 7시 30분까지 기다리다가는 어르신들이 다 주무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9시 뉴스를 보고 드라마도 보고 자정이 되어야 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활 패턴이 다르고 삶의 리듬이 다르니 식사 시간도 같을 수가 없지요.

식습관이 다른 것은 더 하지요. 된장 뚝배기나 절인 음식을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퓨전 음식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들은 식사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고, 식단을 맞추기는 더 힘듭니다. 그러니, 아침에 일찍 잠이 깨는 어르신들은 얼른 된장찌개 한 그릇에 밥 한 사발 비벼 잡숫고 나가시고, 늦게까지 잠을 자도 잠이 모자라는 젊은이들은 쨈 바른 토스트에 우유 한 컵 마시고 나가는 것입니다. 피차에 부딪힐 염려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신기한 시간과 식탁의 조합은 그 외딴 섬에서 도대체 누가 시작했는지 신비하기만 합니다.

                                            정성학 목사 / 제주 기적의교회

정성학 목사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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