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들리는 메시지

강경원 목사·예일교회l승인2017.01.10l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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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700년 경에 사역한 이사야는 고난받는 메시야가 십자가 고난에 침묵하시는 모습을 기록하였다(사53:7). 시기심으로 모함하는 유대인,엉터리 판결하는 빌라도에게 할 말이 없어서 말없이 당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철저한 순종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셨기에 할 말이 없으셨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리기로 작정하고 희생하셨기에 침묵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침묵은 하나님사랑의 표현이다. 주님이 단독으로 당하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에 하나님이 동참하셨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많은 유대인이 죽어갔다.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왜 못 본척하십니까?”절규하며 죽어간 것이다. 유대인 중에 하나님의 답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못 본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와 함께 그 고통을 나누고 있다.” 이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 남아서 수용소를 나오게 되었다.

중세 수도원에서 아침 예배 마치고 저녁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설교하겠다고 광고하였다.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모였다. 설교자가 촛불을 가지고 아무 말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 상으로 가서 발을 비쳐 보여 주었다. 다음은 옆구리, 그 다음은 양 손과 가시관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그날 설교의 전부였다. 모였던 사람들이 침묵 속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십자가 앞에서 말이 필요치 않다. 주께서 나의 질고, 나의 슬픔을 대신 짊어 지시고 침묵하신 것이다. 나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려고 말없이 오래 참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침묵은 영원한 소망이다. 주님은 십자가의 승리를 확신하고 계셨다. 부활의 승리를 보시며 십자가로 나가신 것이다. 예수님의 침묵은 가장 강한 승리의 표현이었다. 부자 집 대문 앞에 버려진 거지 나사로는 부자를 바라보며 탄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일체의 불평이 없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하고 풀만 먹는 소가 평생을 놀면서 고기만 먹는 사자를 보고 원망하지 않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살아가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세상이 말도 많다. 탓도 많다. 이때 신앙인은 침묵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음성을 들어야 한다. 

강경원 목사·예일교회  igoodnews@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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