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기의 문화칼럼]예수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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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의 문화칼럼]예수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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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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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 목사의 G#Eb(God은 # Ego는 b, 즉 하나님은 높이고 나 자신은 낮추는 예배자를 의미)

민호기 목사의 G#Eb

(God은 # Ego는 b, 즉 하나님은 높이고 나 자신은 낮추는 예배자를 의미)

수많은 기독교 서적과 책들이 있지만, 정작 제대로 다루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알지 못 하는 이가 있다. 예수님의 이야기, 나의 책 <예수전>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傳 : ‘한 인물의 일생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서술하는 서사양식’을 따르는 동시에, ‘예수 전지적 1인칭 시점’으로 쓰는, 말하자면 예수의 눈으로 보고 그의 귀로 듣고 그의 언어로 말하고 그의 뜻으로 헤아리고 그의 감정으로 느끼고 그의 생각으로 음미하고 그의 심장으로 숨쉬고 그의 손으로 만지고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그와 함께 십자가에 오르고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사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탄식이 이야기를 막아선다. 모태신자로 평생을 예수를 믿고 따라왔다. 심지어 예수께서 이 땅에 사셨던 것보다 더 긴 인생을 살았고, 그 분보다 더 오래 사역을 했고, 그 분보다 더 먼 길을 오갔고, 그 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분은 벳새다에서 5000명을 먹이셨지만 나는 SNS에서 수천만 명과 소통한다. 그러나 나는 진정 예수를 만난 것인가. 그를 아는 것인가. 나는 정말로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누구보다 그를 잘 알고 사랑한다 여기며 살아왔지만, 정작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그 분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한건 아닌지. ‘나’라는 좁고 굴절된 렌즈를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 이야기는 거칠고 서툴지만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만들 듯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글을 쓰고 곡을 써 내려갔다. 내 마음은 늘 황량한 유대 땅 어딘가를 떠돌았고, 사해의 언저리를 서성였다. 내 눈 앞에 그 분을, 그가 걸었던 길을, 그가 만난 이들을 띄워 올렸다. 준비기간 10년, 작곡 및 녹음 3년, 집필 2년. “나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았다”라고 매번 대뇌이며, 스스로를 곧추세웠다.

실은 이 책을 쓰는 지난 3년 내내, 내 삶이 뭔가 사역자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나 요즘 쓰레기가 된 것 같아”를 입에 달고 살던 어느 날, 후배가 시큰둥하게 되받아쳤다. “형은 쓰레기는 아니고, 재활용이죠.” 그 순간엔 깔깔 웃고 말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은 주님의 음성으로 내 안에 분명해져 오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쓰레기가 맞다. 부패하고 냄새나고 쓸모없는 존재다. 구겨져 버림받아 마땅하다. 그런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를 구원하셨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편 40 : 2, 3)

쓰레기 같은 나를 ‘재활용’하사 내 입에 새 노래를 두시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셨다. 아마도 나는 끊임없이 낡고 더러워지고 버려지고 또 다시 재활용 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는 끝끝내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새롭게 하실 줄을 이제 내가 믿는다. 함께 계심과 다시 오심, ‘이미’와 ‘아직’ 그 어디쯤에서 민호기는 쓰고 부른다. 예수를, 그의 뜨거운 삶과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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