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기의 문화칼럼]발효인가 부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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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의 문화칼럼]발효인가 부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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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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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기 목사의 G#Eb (1)

근래 신인찬양사역자 중에 ‘무료사역 신청 받습니다’하는 내용의 홍보를 하는 분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인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최후의 몸부림인 것만 같아 마음 한쪽이 씁쓸한 한편, 어찌 보면 신인이기에 가능할지 모를 순전한 사역자의 마음인 것도 같아 부럽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엔 저렇게 돈 한 푼 받지 않아도 그저 불러주시는 곳이 있단 사실 하나만으로,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허락된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히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에 문득 서글퍼도 지는군요.

지금의 저는 그 때보단 조금 더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저를 찾아 주는 교회와 공동체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지만, 오히려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저 자신을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섭외전화의 말미에 늘 어색한 분위기로 “저기 사례는 어느 정도...?”하고 물어 오실 때면 순간, 생각이 많아집니다. 저의 가치가 얼마의 돈으로 환산되는 찰나, 저는 사역자와 삯군 사이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집회를 잘 마치고 돌아올 때 쥐어주시는 사례금 봉투를 받을 때면, 때론 봉투의 두께에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합니다.

저는 참으로 한심하고도 연약하군요. 사전에서 말하는 ‘발효’란, 「미생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시키는 과정이다. 발효반응과 부패반응은 비슷한 과정에 의해 진행되지만 분해 결과, 우리의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물질이 만들어지면 발효라 하고 악취가 나거나 유해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부패라고 한다」는데, 저의 삶과 사역은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혹은 유해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건 아닌지.

저는 부패하고 있는 것인가요, 발효되고 있는 것인가요. 너무도 존경하던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20대 초반의 제가 그 분의 책을 읽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가요.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다짐하게 하셨던 그 분은, 세월이 많이 흐른 근래 보수정치 운동의 선봉에 서서 많은 말들을 쏟아내십니다. 예전엔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시던 그 분의 요즘 말들은 저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 분 이 ‘맛이 갔다’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더 큰 분이 되셨다’ 고도 합니다. 그 분은 부패되신 것인가요, 발효되신 것인가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경력이 쌓이며, 이름을 얻으며, 지위가 생기며 달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달라져야 합니다. 사역자가 돈에 연연하는 것은 죄악이지만, 적절한 수준의 사례(라는 표현은 대가를 전제로 하기에 옳은 말은 아니지만)를 받는 것은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겐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적절한 수준’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는 거고, 그 기준이 신인 때와 너무 많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고, 내 생각의 ‘적절한’이 다른 사람들에겐 ‘어마어마한’ 것이라면 그 또한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저의 변화를 발효로 느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부패로 느낀다면 저는 과연 건강한 사역자인가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사역을 한다는 것, 성숙해 간다는 것.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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