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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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6.06.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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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위기 앞에 설 때에

여호수아 3:1~6
찬송 337장

오늘 본문은 요단강이라는 위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고로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 준비가 아닌 신앙을 점검하는 모습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강을 건넌 이후 전쟁이 시작될 터인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자신의 몸을 성결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누구나 넘실대는 요단강 앞에 서노라면 이 강을 어떻게 하면 건널 수 있을지 인간적인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려하게 되어 있습니다. 배를 건조해야 되는지, 다리를 만들어야 되는지, 아니면 우회해야 되는지 생각합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 전쟁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 군수물자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어떤 전략과 전술이 있는지 등 참 많은 것들을 고민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가 위기 앞에 서게 될 때에 가장 먼저 행해야 될 모습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여전히 위기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가 가장 먼저 행해야 될 것은 내 안에 진짜 나를 발견하며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성결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일치할 때 일하십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위기 가운데서 역사하심으로 위기는 기적의 전주곡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시시때때로 위기 앞에 서게 될 때에 나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강대석 목사 / 청운교회

 

화요일

영혼의 양식인 성경

마태복음 4:1~4
찬송 200장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인간은 떡으로 삽니다(4절).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 반드시 음식물이 공급되어야 살 수 있습니다(창 1:29).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서 양식을 얻어 삽니다. 하나님이 주신 육체의 건강을,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으면서 지켜야 합니다.
둘째, 인간은 정신적 양식으로 삽니다. 인간은 밥과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정신적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허기를 해결해도 감성적 허기를 해소하지 못하면 인간은 공허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정신 활동이 인간 삶의 질을 높여 주기 때문입니다(왕상 4:32~33).
셋째, 인간은 말씀으로 삽니다(4절). 떡을 먹고 감성적 허기를 채우고 산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에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삽니다. 인간은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영혼의 활동인 기도를 하며 살아야 영혼이 만족을 얻고 마침내 행복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육체의 만족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정신의 만족을 위해 문화 활동을 하며, 영혼의 만족을 위해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때 인간은 균형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행복한 성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를 건강하게 돌보게 하옵시고, 기도 생활에 힘써 균형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이승수 목사 / 양문교회

 

수요일

감사는 더 큰 축복의 시작

누가복음 17:11~19
찬송 429장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해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마을 입구에서 열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도움을 요청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그들을 보시고“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다가 깨끗함을 받게 됩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한명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감사한 것입니다.
아홉명과 한 사람의 차이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없고가 아니었습니다. 감사를 표현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였습니다. 감사는 표현할 때 완성됩니다. 그들의 처지는 같았습니다. 함께 동고 동락하고,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함께 순종하고, 함께 고침받은 것까지는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사람이 돌아와 주님께 감사하는 순간 그들의 처지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주님은 돌아와 감사를 표현한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라고‘믿음’이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구원해 주십니다.<18~19절> 
‘감사의 문’이 열리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면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감사하는 한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더 큰 복 받으며 살게 하옵소서.

이정기 목사 / 신나는 교회

 

목요일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중보

출애굽기 32:11~14
찬송 364장

모세가 드린 중보의 기도는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드린 기도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전심으로 중보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산 아래서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금 송아지 앞에서 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백성들은 모세가 자기들의 운명을 걸고 중보하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이 머리 위에 임하여 있음을 알지도 못한 가운데 여전히 시험에 빠져 있습니다. 모세가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애절한 영적 씨름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영적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영적 파수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영적 씨름을 싸우는 것이 때로는 외로움인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며 핀잔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불을 질러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에 심어 놓고 불 붙게 하신 것입니다.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중보로 기도하니 감동 아닙니까! 모세의 중보를 백성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저들의 용서를 위해 모세의 기도를 쓰시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를 위해 중보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쓰시고자 하심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주신 영적 파수꾼의 자리를 지키게 하옵소서.

유재명 목사 / 안산빛나교회

 

금요일

변화

디모데전서 1:12~16
찬송 421장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일찍이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자기 자신의 변화일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는 2가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인생관이 바뀌고, 사는 방법이 바뀌고, 인격이 변화됩니다. 내적인 변화가 곧 외적인 생활의 변화로 바뀌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예수를 믿고 삶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사도바울 일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핍박하던 자가 예수를 증거 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자랑하며 사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는 특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는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지 않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며 일생을 살다가 순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에 목숨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전 9:16절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 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의 가장 큰 변화는 핍박자에서 복음 전도자로의 변화입니다.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남은 인생을 복음 전도자로의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 주님! 복음전도자로의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게 하옵소서.

이진해 목사 / 신영통제일교회

 

토요일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영광

로마서 8:18~22
찬송 340장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감수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과 고통들도 우리에게 나타날 천국의 영광에 비하면 매우 미약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오늘 본문 18절에서 말하기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합니다. 또한 이날의 천국의 영광은 피조물까지도 이날을 고대하며 바라는 것(19~22)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세상의 피조물 역시 우리의 영광스러운 그 날을 고대하며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피조물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타락으로 천지가 저주 받은 후(창3:17~19) 인간뿐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까지도 함께 고통을 받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피조물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바라며, 또한 함께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영광의 그날이 창조 본연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날이 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광의 날은 우리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천하 만물에게도 기쁨과 영광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현재의 고난속에서도 미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이용태 목사 / 백석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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