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문화칼럼]신학문화의 차이와 교단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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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문화칼럼]신학문화의 차이와 교단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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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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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학 전통에 있어서 신학함의 권위는 주로 선교사에게 속한 것이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국인 신학자를 배출했던 감리교에 비해 장로교 신학 잡지의 필진은 선교사들이 독차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감리교와 장로교의 한국 전통문화와 이성의 역할과 관련해서 나타난 견해의 차이는 결국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입장의 차이로 나타났는데, 결국 신학함의 차이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장로교와 감리교 사이에서 교회 문화와 신앙 색깔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신학교 자금 유용문제에서 불거진 갈등은 신학적인 입장의 차이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는데, 성서 이해와 연구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한 김재준과 박형룡의 신학적인 논쟁은 기장과 예장으로 분열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분열의 원인이 신학적인 차이에만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양자 사이에서 드러난 신학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성경 해석에서 역사비평을 인정하느냐, 성서 계시를 축자영감의 의미에서 이해하느냐 아니면 유기적으로 이해하느냐에서 나타난다. 신학함에서 이성과 신앙(성경)이 갖는 의미와 비중이 달랐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궁극적으로 계시와 성서의 형성과정에 인간의 참여가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와 관련해서 나타난 차이였다. 성서에 관한 이해의 차이는 성서연구 방법의 차이로 이어졌다. 결국 신학함의 차이였다. 이것은 후에 양대 교단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이한 교회문화로 나타났다. 같은 개혁주의 전통에 있다고 해도 기장에서는 현실 참여적인 교회 문화가 강했고 또한 민중신학과 정치신학 같은 연구가 주류를 형성하였으며, 예장에서는 모든 역사에서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였다. WCC의 용공성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로 분열된 합동과 통합에서도 신학함의 차이는 현저하며 그에 따른 교회문화는 물론이고 신학연구문화 역시 다르다.

한편, 같은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특히 예장 합동측과 고신측이 꺼리고 있는 바르트와 몰트만(Jürgen Moltmann) 등의 신학에 관한 연구가 통합 측과 기장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것은 교회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한 신학함의 차이이다.

다시 말해서 보수적인 성향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전통에 있는 화란과 남아공 그리고 미국의 일부 신학교의 학문적인 전통, 특히 박형룡을 위시해서 박윤선,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 헤르만 도이벨트(Hermann Dooyeweerd),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드 흐라프(S. G. de Graaf),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등의 신학과 변증학을 고수하는 합동과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수용하면서도 보수적인, 소위 중도의 입장을 취하는, 그래서 비교적 폭넓은 신학적 전통을 수용하며 통전적 신학을 추구하는 통합 측의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기장에 비해서는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런 경향은 여러 교단 신학과 각각의 교회 문화의 관계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교단 신학의 차이에 따라 교회 문화가 달라졌고, 교회문화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신학함의 길을 걷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신학함은 우리의 문제 혹은 교회의 관심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형성되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비록 김재준의 성서비평이 유럽에서 인정되고 있었던 이론이었다고 해도 당대의 한국 교회 공동체의 의식과 문화를 변화시킬 만한 이유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고민이 담겨 있지 않고 또 우리가 발견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문제를 한국에서 수렴하는 과정에서 역사비평 이론의 발견의 과정을 함께 고민하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천천히 다가갈 할 필요가 있었지만, 서울 남대문 교회 김영주 목사가 제기한 모세오경 저작자 문제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나 감리교 선교 50주년을 기념으로 번역 출판된 “아빙돈 성서 주석서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신학은 수렴의 과정이 없이 새로운 지식으로 소개되었을 뿐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결여된 신학문화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분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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