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고난까지도 사용하신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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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난까지도 사용하신 하나님의 섭리”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6.05.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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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나비 학술대회, ‘한국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주제로 열려

조선의 패망과 일본 식민지화는 하나님의 섭리였을까. 김영한 박사는 “조선 붕괴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기 전에, 지도층의 무능과 내부 분열 및 외세 의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개혁주의이론실천학회 주최로 제12회 샬롬나비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오후 2시 백석대 대학원 목양동 2층 세미나실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개혁주의이론실천학회(이하 샬롬나비) 주최로 제12회 샬롬나비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오후 2시 백석대 대학원 목양동 2층 세미나실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기조강연에서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는 “조선은 하나님이 망하라고 정해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 특히 지도층이 무능하고 시대변화에 무감각하고 외세만을 의존했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조선의 멸망과 일본 식민지화를 하나님의 예정론에로 귀결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며, 바른 개혁신학적 이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특히 그는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은 일본만의 힘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양해를 통해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국제사회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눈감아준 데는 조선 전체의 무능과 부패 탓이 컸다는 것.

김 박사는 “당시 독립을 스스로 유지할 힘을 키우지 않고 열강에 기대려고만 했던 고종의 ‘세력균형 외교’도 비웃음과 불신만 샀을 뿐이다. 동아시아의 시계가 긴박하게 돌아가던 시절, 국제질서를 잘못 이해하고 외세에 의존한 대가로 받은 청구서는 ‘망국’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일본 식민지화는 하나님의 섭리로 영적 개신을 위한 탈출구를 모색하는 기간이라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한국은 1894년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05년 일본과 을사보호조약 체결, 국권강탈 및 상실, 1907년 고종의 퇴위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가는 과도기인 1907년은 정부와 나라를 빼앗기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한국인 선교사와 기독교 신자들을 지배한 시기”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인들은 국권상실의 위기의식 속에서 어떤 전통종교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더욱이 교인들은 국권상실의 비운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또 조선 식민지 과정에서 일어난 1907년 영적 대각운동에 대해 “평양의 대각성운동은 정치적 암흑기를 통해 그 마음을 갈아엎으시면서 복음주의로 한국교회를 체질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6.25 전쟁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무관할 수 없다. 한국 민족이 지은 죄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고난을 통해 한국민족을 연단시키고 그 분에 뜻에 순종하게 만드시게 하는 섭리”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쟁을 경험함으로써, 북한에서 남하한 기독교인과 피난민을 통해 공산주의의 실체를 체험함으로써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또한 공산당에 의해 박해당한 그리스도인들은 반공의 정신적 역할을 하고, 전쟁이라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영적 부흥을 체험하는 계기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한국의 반만년 역사는 고난으로 점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난만 가지고 한국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고난을 그분의 선하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떠나서는 무의미하다”며, “고난은 역사를 통해 선하신 섭리와 경륜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연관시킬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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