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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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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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1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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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

창세기 45:1~8 찬송 79장

창세기 45장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극적이며 경이로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지난 20여 년간 단절되었던 벽이 무너지고 형제들 간의 극적인 화해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악함마저도 바꾸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창50:20). 이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요셉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가득했던 독소가 정화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를 믿는 신앙은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영적으로 철든다는 것은 바로 이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사고로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요셉이었기에 그는 형제들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을 때는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기 어렵지만, 그것을 깨닫게 되면 용서가 쉬워집니다.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느냐 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자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롬8:28).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시고, 패배에서 승리를 이끌어 내시며, 죽음에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기대함으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며 그분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주옵소서.

강대석 목사 / 청운교회

 

화요일

성실한 성도

창세기 39:1~6 찬송 330장

정직과 성실은 성공적 인생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요셉의 삶을 통하여 성실한 삶을 배우고자 합니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받던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성실한 요셉을 본 주인은 그를 가정의 청지기로 삼아 그의 신분을 높이고 그를 신뢰했습니다. 보디발의 가정에서 요셉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성실히 행하였습니다.
또한 요셉은 환경과 처지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감옥의 책임자가 성실한 요셉을 신뢰하고 제반 사무를 맡깁니다. 성실히 행하는 요셉을 높여준 것입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도 요셉은 원망하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나갔습니다.
감옥에서 왕의 신하의 꿈을 해석해 준 일로 인해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요셉은 왕의 꿈을 해석해 주고 왕의 신임을 받아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은 성실하게 정책을 잘 수행함으로 애굽을 부강한 국가로 만듭니다.
자기에게 닥친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자기의 삶에 성실히 행함으로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삶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맡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요셉처럼 우리 삶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위기가 닥쳐와도, 맡겨진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이승수 목사 / 양문교회

 

수요일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에스겔 37:1~14 찬송 183장

에스겔서 37장은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B. C. 587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침공하여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모두 파괴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성령이 에스겔을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에스겔을 통해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 죽은 영혼을 살립니다. 뼈들은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에스겔이 뼈들을 향하여 대언하자 뼈가 연결되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향하여 대언했더니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둘째, 병든 몸도 살립니다.  성경에서 ‘살린다’는 단어는 약하고 병든 몸에 활력이 넘치게 하고, 원기가 회복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사용됩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육신을 고치시고, 강하게 하시고, 활력이 넘치게 하십니다. 셋째, 잃어버린 능력도 살립니다.  삼손의 힘은 성령으로부터 나온 힘이었습니다. 성령이 떠나자 힘을 상실하고 결국 적에 의해 두 눈 뽑히고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놀림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기도했을 때 성령이 잃어버린 힘을 살리셨습니다. 넷째, 잃어버린 소망도 살립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소망을 주십니다. 성령을 너희속에 두어 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마른 뼈들만 가득한 골짜기와 같을지라도 성령의 바람이 불면 살아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성령으로 이 땅을 살리시고, 우리 가정, 우리 교회를 살리시옵소서.

이정기 목사 / 신나는교회

 

목요일

우리가 존경해야 할 분들

창세기 9:20~27 찬송 579장

노아는 당대의 의인으로 불릴 만큼 하나님의 기대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홍수로 멸망을 당할 때에 그는 남겨짐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통하여 그 아버지가 약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기둥이 되어 줄 만큼 완전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언제나 불평해도 받아 줄 만큼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자식들이 언제까지라도 속을 썩여도 괜찮을 만큼 완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도 완전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들은 우리들보다 불안한 세상을 먼저 살았으며, 먼저 실패도 하시고, 실수하시면서 사셨습니다. 그 옛날 배우지도 못하신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셨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자식들에게 비쳐진 노아의 허물이 보입니다. 노아의 허물은 다른 사람 보다 믿음이 없어서도 아니며, 다른 사람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사람은 원래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부모의 부족함이 자식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모님들은 영원히 존경받아야 할 분들입니다. 특별히 신앙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믿음의 기본입니다. 부모님들을 대할 때 아직도 ‘잘 하셨고 못하셨고’가 우리에게 기준이라면 우리는 아직 먼 것입니다. 비록 실수와 허물이 많이 있는 분이지만, 자식의 가슴에 부모님은 언제나 존경과 사랑의 대상으로 남아야 할 분들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가정 안에서 부모님들을 잘 섬기게 하소서.

유재명 목사 / 안산빛나교회

 

금요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라

사도행전 3:1~10 찬송 524장

그 옛날 예수님의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데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한 거지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순절 날 성령을  체험한 이후 기도의 능력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습관처럼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데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인 거지를 만난 것은 어쩌면 귀찮은 존재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어마어마한 폭탄선언을 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할렐루야! 그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경험되어 지려면 철저하게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며 기도해야만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능력임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것처럼, 여러분들도 날마다 성령을 체험함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그 능력으로 다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 시대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성령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이진해 목사 / 신영통제일교회

 

토요일

하나님의 진리대로 사는 그리스도인

로마서 2:1~3 찬송 287장

사도바울은 자신들의 외형적인 일들을 내세우면서 도덕적인 선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크게 경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선이나 의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 선과 의를 세워 보고자 하는 인간적인 교만과 이기심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선과 의를 가식적인 것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윤리의식은 유대인의 잘못된 선민의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스스로를 경건되고 모범적인 사람의 기준으로 보아 이방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정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이방인의 잘못은 정죄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이방인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면서도 자기들이 영위하는 삶의 방식만이 오롯이 바른 길이라며 다른 민족들을 폄허하고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잘못된 의식에 대하여 본문은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타인에겐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대로 생활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선과 의가 인간 중심이 아닌 주님 안에서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용태 목사 / 백석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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