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문화칼럼]신학의 과잉, 신학함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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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문화칼럼]신학의 과잉, 신학함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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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4.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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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신학문화 (7)

신학은 문화적인 상황 속에 있다. 신학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언어와 범주들을 가지고 혹은 그것들을 비판하면서 사고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상황성을 가지며 또한 다양성을 갖는다.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는 신학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조명하면서 문화 형성에 미친 신학을 언급한 대표적인 저서다. 니버의 글이 이미 많은 신학자들에게 알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독교 문화 형성에 작용하는 신학의 역할에 대한 성찰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교회(기독교)문화로 넘쳐나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특정한 주제를 강조하는 신학 혹은 새로운 신학함의 방식이 기독교 문화 형성에 미친 영향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교회(문화)사와 신학사를 연대기적으로 비교하며 책을 읽는 가운데 양자의 영향관계가 한 방향으로만 이뤄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학함의 영향을 받아 문화가 형성되는가 하면, 문화의 영향 아래 신학함이 새로운 옷을 입기도 했다. 게다가 상호 영향이 직접적인 연관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신학은 먼저 신앙이 삶의 문화 형태로 정착한 후에 그것에 대한 반성으로 형성되고 또 그 후에 신학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신학함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우와 달라서 한국 교회와 신학은 신학적인 논의보다는 대체로 내용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강하다. 신학은 넘쳐나지만, 신학함은 부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것은 신학을 하나의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습득하는 과정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했다. 그러므로 신학적인 내용이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느냐를 따지지 않는다. 내용 자체가 공감적이거나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되거나 공동체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기만 한다면 문화를 갱신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우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신학적으로 바르게 성찰했느냐를 논의하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필요에 따라 그것도 비판적인 성찰이 없이 우리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예컨대,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례는 선교사들의 신학이 한국교회 문화형성에 미친 영향이었다. 구한말의 상황은 새로운 정신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때였다. 선교사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발달한 문명은 당시 실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선교사들의 가르침과 문명은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다. 

한편, 한국 교회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예배(새벽기도회는 한국 고유의 특징적인 형태이지만 이것 역시 예식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와 성경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인 번영을 신앙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또 자기 교회에 대해 높은 소속감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기독교 문화를 형성할 정도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선교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런 현상은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 교회 문화의 특징인데, 이것은 결국 18-19세기 미국의 신앙과 신학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뿌리를 찾아야 한다. 

미국 선교사들의 신앙적인 배경에 있는 미국 대각성 운동은 조지 화이트필드, 존 웨슬리, 찰스 피니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향 아래 일어난 것으로 개혁적이고 경건주의 신앙에서 비롯한 것이었지만, 특히 장로교의 경우 “근본주의 계통의 성경관과 신학”도 배제할 수 없다. 백낙준의 한국교회사 연구는 이 사실을 더욱 확증한다. 그의 연구를 따르면, 선교 초기의 한국 교회문화는 성경 연구에 중점을 두었고 성서주의의 입장에서 논증을 전개했던 그야말로 17세기 정통주의에 기초한 경건주의적이었다. 민경배는 여기에 복음주의를 덧붙이고 있다.

경건주의와 복음주의는 성경을 기초로 하는 신앙 및 신학이다. 이것은 당시 선교사들의 신학함이 한국교회 문화 형성에 미친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예와 형식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규례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에게 경건과 경건한 삶을 중시하는 경건주의와 복음주의 사상은 매우 좋은 선교도구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일부 신학은 전통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각인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여하튼 구한말 상황에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갈급해 했던 한국인들은 방법이 아닌 내용을 중심으로 선교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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