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의 문화칼럼] 난장을 난장으로 극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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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문화칼럼] 난장을 난장으로 극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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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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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화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34)

난장(亂場)은 사전(daum)에서 보면 이렇다. ①여러 사람들이 뒤엉켜 함부로 떠들거나 덤벼 뒤죽박죽이 된 곳 ②일의 가닥이 잡히지 않고 뒤죽박죽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역사] 예전에, 선비들이 질서 없이 뒤죽박죽으로 들끓어 떠들어 대던 과거 시험 마당. 

마치 선거철을 앞두고 이합집산하는 정치권을 두고 이르는 말인 듯하여 뒤끝이 개운치 않다. 4·13선거가 다가오자 정당은 정권 쟁탈을 빌미로 갈라서고, 정치인들은 공천 문제를 두고 보복 운운하거나 탈당을 감행하므로 정치판은 가름하기 어려운 한 판의 난장판으로 어지럽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정치란 참으로 그 속살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살기 죽기로 승리에 목숨 걸어야 하는 특성상 이전투구가 되지 않을 수 없지 않으나,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사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판단이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줄서기, 패당짓기, 잘라내기 등등이 난무하여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니 말이다. 2016년도 예외는 아닌 것이 이미 난장에서 춤추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난장이래도 좀 품격있게, 고차원적으로, 예술적으로 진행될 수는 없을까. 국민의 서슬퍼런 눈길이 바라보고 있는데 말이다. 아니면 정치판에서 국민의 눈이 말라비틀어진 동태눈을 하고 있다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복되는 정치판의 난장을 치료할 묘수는 없을까.

V. 프랭클의 의미치료(Logotherapy)에 역설적 치유라는 개념이 나온다. 내담자가 기피하는 요소를 직면하게 하므로 극복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에게 먹히지 않을 방법이라 여긴다. 그런 정치인들이 너무 고단수로 무장하고 있기에 직면요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두 얼굴의 정치인들이 연출하는 연극성 장애를 어찌 순진한 국민이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역설적 방법은 이제 정치인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한다. 국민이 정치인들이 그 속을 알지 못하도록 난장을 벌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난장으로 난장을 극복해보자는 말이다. 역(逆)으로 허(虛)를 찌르는 것이다.

국민의 난장은 심판을 향한 망나니 춤이다. 지금까지 난장판에서 정치인들이 주연처럼 놀았다면, 이 역설적 직면요법에서는 국민이 주인공이다. 국민의 손에는 망나니 칼이 쥐어져있다. 난장판 위에서 춤추는 망나니는 죄인의 몸에 칼을 날린다. 심판의 칼이다. 국민이 정치판을 난장으로 놀아버리면 정치인들은 정신이 퍼득 들 것이다. 서슬퍼런 심판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난장은 주권행사인 투표에 있다. 준엄한 공의의 심판이다. 난장의 절정이다. 국민의 난장은 심판을 불러오는 폭풍이다. 

이제 선거유세가 시작된다. 어쩌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 되어 난장을 벌일지도 모른다. 난장으로 난장을 치료할 수 있게 국민이 난장의 폭풍을 일으켜야 한다. 직면하고 직시해야 난장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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