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 집사님, 저 좀 돌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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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집사님, 저 좀 돌봐주세요"
  • 승인 2003.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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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저희 아들이 이번에 수능시험을 안보겠대요. 한번 오셔서 설득 좀 해주세요.” “목사님, 남편이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남편하고 이혼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피하고만 싶어요. 당분간 교회에서도 저를 그냥 좀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요.”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의 사생활이 목회의 일부가 될 때가 많다. 목사를 찾아오는 성도들의 경우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성도수 200여명 이하의 중소형교회라면 성도들의 고민을 듣는 것 만으로도 하루가 짧을 지경이다.

작은 교회는 그래도 낫다. 큰 교회의 경우, 성도들이 익명성을 요구하고 사생활을 감추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한 사례로 지난해 일산의 모 교회에서는 열심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하던 여성도가 가정내의 문제를 이유로 자살을 했다.

그 여성도가 자살을 택할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음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뒤늦게 목회자와 성도 모두 “진작에 알았더라면…”하고 후회를 했지만 그야말로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었다.

목회자들은 목회에만 전념하면서 성도들의 내면적 문제까지 모두 돌아볼 수는 없을까.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베델교회(담임:김철환목사). 개척목회 8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한 채 불혹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김철환목사 부부는 박사학위와 함께 한국교회를 향해 한가지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

‘스데반 돌봄사역’이 바로 그 것. 이름조차 생소한 이 프로그램은 올 초 미국판 교재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스데반 돌봄사역은 성경공부 프로그램도 상담 프로그램도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국교회에서 이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스데반 돌봄사역원장인 배현숙사모는 스데반 돌봄사역을 이렇게 정의했다.

“과거 한국교회는 신앙과 기도만으로 성도를 돌볼 수 있었지만 익명성을 중시하고 철저히 개인화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일대일 돌봄사역만이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 돌봄사역은 평신도들이 직접 위기에 처한 평신도의 돌봄자가 되어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일종의 상담자라고 볼 수 있지만 대안이나 방법을 제시하기 보다 상대의 문제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역을 다합니다. 모두들 잘난척하며 말하기만 좋아하는 시대에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중고등학교 시절 ‘마니또 게임’을 연상시키는 스데반 돌봄사역은 개교회 프로그램이다. 교회 담임목회자나 사모, 전도사들이 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뒤 평신도를 교육할 수 있다.

평신도는 5개월동안 매주 2시간 30분씩 총 50시간의 훈련을 받아야 돌봄자가 된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10~20대 청년들보다 4~50대의 성숙한 성도가 돌봄자가 되는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돌봄자는 교육을 통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 노인들의 성향, 자살충동자들의 특징, 죽음에 이르는 단계 등을 배운다.

돌봄자와 피돌봄자의 만남은 교회가 관리한다. 담임목회자나 지도자가 돌봄이 필요한 성도와 일대일 사역을 주선하면 돌봄자는 피돌봄자를 일주일에 1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피돌봄자를 만난 돌봄자는 충고와 조언을 삼가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돌봄자의 상황과 비밀을 지키는 것이 돌봄자의 임무다.

베델교회가 스데반사역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4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양재동에 교회를 개척한 직후였다. 이전에 목회했던 강북과는 사뭇 다른 강남은 성도들이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이 강했다. 구역예배조차 모이기 힘든 상황에서 배사모는 부친상을 당한 성도와 맞닥뜨렸다.

이미 미국에서 스데반 돌봄자과정을 마친 배사모는 이 성도를 꾸준히 관리하면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위로했다. 그 결실로 당시 피돌봄자였던 성도는 지금 돌봄자로 활동하며 위암에 걸린 성도를 돌보고 있다.

또 한명의 돌봄자 김청환집사는 우울증에 걸린 성도를 담당했다. 김집사 역시 남편이 우울증을 앓아온 터라 우울증 환자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만나기조차 꺼려하던 피돌봄자는 점차 마음을 열어놓기 시작했다. 중증 우울증 단계에 진입할뻔 했던 이 성도는 대화를 통해 질병의 치유를 체험했고 불과 몇개월만에 교회봉사활동에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스데반 돌봄사역은 한 사람에 대한 관리가 끝날 때까지 남자는 남자를 여자는 여자를 돌보는 일대일 사역을 지속한다. 노인이나 말기암환자의 경우 죽음을 맞을 때까지 일대일 사역은 계속된다.

스데반 돌봄자로 활동하면서 성도들의 성품도 변화된다. 김청환집사는 무엇보다도 성도간에 받는 상처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저부터 모난 성품을 다듬으려고 노력하게 돼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 들죠.” 그도 그럴 것이 스데반 돌봄의 정신은 ‘사랑’에 있고 ‘비밀 지키기’가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들간에 소문과 비방을 잠재울 수 있다.

스스로를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은 곧 교회의 성숙을 이뤄낸다. 이러한 결과로 베델교회는 개척 3년만에 출석성도 1백명으로 성장했다. 성장지향·물량중심의 교회가 돌봄과 사랑위주로 거듭난 것이다. 베델교회에서 평신도들은 목회 동역자로 지칭된다. 돌봄과 상담으로 평신도간에 관리가 이뤄지고 목회자는 설교와 기도에만 힘쓸 수 있기 때문이다.

스데반 돌봄사역을 통한 베델교회의 성장을 지켜본 한국교회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철환목사는 “최근 한 대형교단 목회훈련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왔고, 양재2동 지역교회들이 스데반교육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베델교회는 지역교회를 대상으로 오는 9월2일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늘어나고 있다. 빈곤의 문제, 질병의 문제, 이혼의 문제, 자녀양육의 문제 등 하나하나 손꼽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치유자가 되고자 하는 교회는 많지만 정작 그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데반 돌봄사역은 하나님을 통해 교회가 직접 나서서 성도를 치유하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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