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전도기지 삼아 세계로 나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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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전도기지 삼아 세계로 나갈 터"
  • 승인 2003.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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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가가 즐비한 이대입구 맞은 편. 아현동쪽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래된듯 낡은 건물들 사이로 미용실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미용실은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마음에 쏙 드는 헤어스타일을 연출하는 미용 실력에서도 그렇지만 매일 아침마다 찬송과 기도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예배당으로 잘 알려져있다.

로얄 에벤에셀 미용실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주일에는 에벤에셀선교회로 간판이 바뀐다. 작은 미용실에서 10년 넘게 중보기도의 외침이 울려퍼진 것은 하나님을 통해 두 여인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로얄미용실원장 김영광전도사(에벤에셀선교회 부회장)는 20년전까지만해도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비웃던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많이 접하는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이 미용실을 찾았고 그중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구애(?)를 펼쳤다.

어떤 손님은 머리를 컷트하는 중에 “내가 매일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백번을 기도하고 전도해보시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될걸….” 자신감에 차있던 김원장은 기독교인들을 그저 우습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계획앞에서 한낯 부질없는 자만심에 불과했다.

돈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김원장은 미용실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술집이며 식당 등 다른 사업으로 손길을 뻗쳤다. 그러던 어느날, 사업에 문제가 생기고 돈을 떼이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빚독촉이 끊이질 않았다. 더이상 갈 곳이 없던 김영광원장에게 하나님께서 손을 내미셨다. 미용실 단골손님을 따라 간 여의도순복음교회. 첫 기도를 드릴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지 않겠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사흘이 지났을 때, 평소 김원장을 전도하고 싶어했던 대순진리회 성도가 미용실에 걸린 십자가 예수상을 보고 시비를 걸어왔다. “정말 예수가 자기 아들이라면 저렇게 벌거 벗겨서 십자가에 메달겠어?”

갑작스런 질문에 김원장은 말문이 막혔다. ‘어? 하나님은 왜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았지.’ 딱히 답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원장은 그 때부터 하나님을 정확히 알기 위해 성경을 탐독하고 모르는 것은 물어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미용사들과 예배를 드렸지만 어떻게 말씀을 나눠야할 지 몰라 조용기목사의 설교테잎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성경을 이해했고 구역장과 조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적절한 답변을 찾아냈다.

열정이 있다고 모두 성령에 취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결신하고 바른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신앙의 동역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때 김원장에게 뜨거운 믿음과 성경적 지혜를 나눠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연숙목사(에벤에셀선교회 회장)다.

김연숙목사 역시 당시에 하나님을 영접한 지 얼마 안된 초신자였다. 불교대학까지 수료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인 김목사는 6남매 중 자신의 위로 5남매가 모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찾았다.

뜨겁게 하나님을 받아들인 그녀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겼고 그 열정이 높이 평가받아 짧은 시간에 구역장과 조장이라는 직책이 맡겨졌다. 그 때 자신에게 맡겨진 초신자가 김영광전도사였다. 당시를 회상하는 김영광전도사는 “김연숙목사(당시 집사)의 열정과 귀찮을 정도로 많은 순복음교회의 예배가 철저하게 신앙을 단련시켰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조장과 구역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함께 전도에 나서면 승합차 한 가득 결신자를 모았고 김원장이 입을 열어 전도하면 김목사가 훈련시키는 일을 맡았다. 근심과 걱정이 있으면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 하나님을 믿고 3년만에 김원장은 지고 있던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세상적인 끈도 모두 놓게 만드셨다. 장사가 잘 되던 술집도 빚을 모두 갚고 나자 문을 닫게 만들고 오직 미용실 하나만 그에게 허락하셨다. 그것도 간신히 그달에 필요한 만큼의 수입만 주실 뿐이다. 그래도 김원장은 불평하지 않았다.

“영혼이 잘되야 범사가 잘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모든 일은 은혜가운데 있었고 순조로이 진행됐다. 예전처럼 물질적인 풍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은혜안에서 나누고 사는 것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고 김원장은 김연숙 조장과 상의한 뒤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미 순복음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김연숙 조장도 신학교에 편입했다. 그렇게 둘은 교회내 신앙의 동역자에서 신학 공부까지 함께 하는 인연을 갖게됐다.

기도로 맺어진 두 사람은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기도생활을 충실히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측으로부터 신학생을 돕는 선교회를 조직함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왔다. 다시 3일동안 금식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교사역을 허락하셨다.

그렇게 해서 창립된 것이 ‘에벤에셀선교회’다. 에벤에셀선교회의 첫 사역은 신학생을 위한 중보기도와 영성훈련이었다. 이후 92년 창립 첫해 대만과 필리핀을 오가며 해외선교사역도 시작했다.

김영광전도사의 미용기술로 현지인들을 위한 미용봉사도 펼치고, 선교지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한편 김연숙목사의 뜨거운 기도로 선교지를 축복했다. 이들의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복음의 불모지인 중국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중국은 여느 선교지와는 달랐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공안의 눈을 피해 선교하느라 무척 고생을 하고 있었고 동북 지역 사람들의 생활도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때부터 에벤에셀선교회는 선교사를 위한 사역으로 지경을 넓히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에벤에셀선교회는 선교사들의 안식관 형태인 종합선교센터를 세우고자 기도한다. 또 믿음있는 미용사들이 양성되면 이대입구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노인들을 위해 한끼 식사대접과 이미용봉사를 펼칠 계획이다.

김연숙목사는 예장측 한 보수교단에서 여성으로는 두번째로 안수를 받고 신학교 학생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일에는 선교회를 통해 작은 예배를 이끌고 있다.

김영광전도사는 자신의 직업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고백한다. “미용실에 찾아오는 손님 하나하나가 모두 전도 대상이에요. 어떤 사람은 한번에 전도할 때도 있지만 15년동안 힘들게 전도한 이웃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오게 되어 있어요. 오랫동안 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하다 보면 언젠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으니까요. 저 역시 미용실을 찾던 손님들의 기도가 없었다면 지금도 세상 속에서 방황했을겁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 동안 교회 전도사로 시무했던 김영광전도사는 하나님이 전하신 자리가 이곳이라면 사업장을 예배당처럼 활용하는 것이 지혜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가 되자 손님들이 밀려든다. 오전에는 예배로 인해 손님을 받지 않는다. 그 때문에 생기는 영업의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 그에겐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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