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冥福)’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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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冥福)’에 대하여
  • 승인 2003.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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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이 별세한 상가에 문상(問喪)할 때나 조전(弔電)을 보낼 때 고인에 관한 인사말에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든지 장례식예배 때 기도말 중에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하오니”등의 표현은 쓸 수 없는 말이다.

이 ‘명복’이라는 말은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행복”이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며 불가(佛家)에서는 죽은 사람의 사후(死後)행복을 위하여 행하는 불사(佛事)의 하나로 쓰는 불교적 용어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기독교 신자로서 별세교인의 사후 세계에서 누릴 복을 ‘명복’이라고 한다면 큰 착오가 아닐 수 없으며 기독교인이 사후에 누릴 복은 “영원한 복락(福樂)”인 영복(永福)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리게 되는 것인즉 저승복인 ‘명복’이란 말은 쓸 수 없다.

이럴 때 그 별세자의 신불신(信不信)을 불문하고 유가족을 대상으로 위로의 말을 하되, 신자라면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라든지 혹 불신 상가(喪家)라면 “무엇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등으로 “문상인사”를 나누면 될 것이다.

교인이 사후에 누릴 복은 저승 명복이 아니라 천국의 영복이기 때문에 참 은혜이지만 육신적 사별의 슬픔은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살아남은 유가족 중심의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명복’은 일반 불신 사회에서는 흔하게 쓰고 있으나 기독교 신앙원리에서는 합치되지 않는 말이므로 그 사용을 삼가야 한다.

‘미망인(未亡人)’에 대하여
별세한 교인의 생존한 배우자를 미망인(未亡人)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 ‘미망인’이라고 하면 “남편이 죽고 홀로 사는 여인”이라는 뜻으로 일컫는데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불신자나 유교적 관점에서는 죽은 자를 ‘망자(亡者)’로 보기 때문에 생애를 동반하던 죽은 자의 배우자가 아직 채 죽지 않아서 ‘망자(亡者)’가 되지 않아 살아남아 있는 자임을 일컬어 ‘미망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인의 죽음은 ‘망자’가 아니고 천국을 간 자이니 복을 입은 자이고 또한 그의 배우자도 장차 앞서간 남편과 천국에서 만날 것이므로 “아직 망하지 않는 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매우 이교적이고 불신앙적인 말로서 교인의 범주에 든 사람은 물론이고 불신자의 범주에 든 사람에 관하여도 신앙인으로서는 쓸 수 없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남은 가족’ 또는 ‘유가족’(유족)이라는 말로 써야 한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의 구분
교인의 기도 말 중에 “사랑하는 하나님”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 “사랑하는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기도자가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기도자편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말이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고 그 사랑의 대상을 기도자편으로 설정하여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이때 반드시 “저희들(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해야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인간편의 사랑과 구분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하는…”이가 되고 하나님은 “하시는…”인데 여기에는 “상대존대보조어간”(相對尊待補助語幹)인 ‘시’라는 음절을 하나님의 행위 묘사에서만 삽입하여 쓸 수 있는 말임을 유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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