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의 죄(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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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의 죄(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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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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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종 목사·백석대학교 총장

우리 사회에 무관심이 만연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6일 북한에서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을 때 미국, 중국, 일본에 사는 교포들이 한국의 친인척들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가 폭주했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덤덤했다. 몇 차례 핵실험을 겪었기 때문에 면역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를 초월할 만큼 성숙했기 때문일까?

무관심은 이번 경우만이 아니다. 각계각층이 제2의 IMF가 올 것이라는 신호를 보낼 만큼 국내의 경제사정이 매우 어렵지만 정치계나 노동계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제20대 총선을 3개월 남짓 앞두고 있지만 정작 권리를 행사하여야할 국민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교회의 분열과 침체가 계속되고 교회의 신임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부와 사회에 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창구조차 일원화하지 못하고 있다. 2023년까지 대학 입학생들이 16만 명까지 줄어들기 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존립을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대학의 교직원들은 무덤덤하다.

성경에 보면 무관심은 예수님 당대 유대사회에서도 만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세례요한이 메시야의 선구자로 왔고, 예수님이 메시야로 왔지만 유대인들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에게 무관심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마 11:17; 눅 7:32)라고 탄식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상황에 매우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하셨다. 백성들의 질병을 치유하시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죄인들을 찾아 죄를 용서해주시고, 유대 나라의 임박한 재난을 내다보시고 눈물까지 흘리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권면한다.

국가나 자신이 소속한 기관이나 공동체의 어려움을 보고도 무관심 하는 것은, 그리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마치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간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행위와 같다. 이러한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웃에게 마땅히 관심을 보일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관심은 사랑의 의무를 외면하는 것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에게까지 천국의 문을 닫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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