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기획] 거목들은 사라지고 차세대 행보는 더뎌… 인물 공백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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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기획] 거목들은 사라지고 차세대 행보는 더뎌… 인물 공백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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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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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2015

광복 70주년 대형집회 성공시킨 김삼환 목사

▲ 김삼환

“김삼환 목사니까 가능했다.”

지난 8월 9일 시청앞 광장에 30만 성도를 끌어 모은 ‘2015 평화통일기도회’. 한국교회 마지막 대형집회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속에서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책임을 새롭게 하고 통일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이 행사는 단체와 교단, 교회 등 소위 김삼환 목사 인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개별적 연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교황 방문 행사와 매년 커지는 석가탄신일 행사 등 타종교의 세력 과시가 거듭되는 상황 속에서 개신교도 여전히 연합이 가능하고, 파워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대규모 연합집회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재정과 동원이 모두 필요하다. 대형교회 리더십을 중심으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김삼환 목사는 올해 원로목사 추대를 앞두고 있어, 앞으로 이와 같은 대형집회를 또 성사시킬 수 있을 지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김삼환’이라는 이름석자가 가지고 있는 맨파워는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김삼환 목사는 올 연말 당회장직에서 물러난다. 명성교회는 임시당회장체제로 당분간 전환된다. 김 목사의 리더십에 대적할 차세대를 찾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가 떠난 빈 자리는 상당히 허전할 것으로 보인다.

 

신앙의 끈 놓지 않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

▲ 김영삼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1월 22일 새벽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잘 알려진 고인의 장례식은 유족의 뜻에 따라 기독교식으로 진행됐다.

김장환 목사는 “고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예비하신 거목이었다”며 “늘 예배하기에 힘썼던 장로 대통령이 이제 그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끈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제 14대 대통령에 취임, 첫 문민정부를 열었다. 그는 재직기간 동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하나회 척결 등 군부독재 청산과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재산등록제 시행 등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서는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은 조부로부터 예수님을 영접했으며 아들 김현철 씨에 이르기까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3년 2월 대통령 취임식에 앞서 상도동 자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감사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은 임종 전 가족들과의 모임에서 찬송가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벼랑 끝 난민들의 손 붙잡은 메르켈 총리

▲ 메르켈

독일 우파로 분류되는 기독교민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05년 이후 올해로 11년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난민정책에 있어 보수적 입장이었던 기민당이 올해 시리아 등 중동에서 촉발된 난민문제에 의미 있는 행보를 취했다. 바로 메르켈 총리가 100만명 이상의 난민들에게 독일 국경의 문을 열어 준 것이다. 독일과 메르켈 총리의 포용적 난민정책에 전 세계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난민정책을 위해 100억 유로(약 13조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올해 유럽연합(EU) 소속 국가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난민들을 수용했다. 

물리학자 출신의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의 목회자 호르스트 카스너의 첫째 딸이다. 호르스트 목사는 메르켈 총리가 생후 6주에 불과할 때 청년 담당목사로 부름 받아 서독지역에서 동독행을 감행했다. 목회 일념 때문이다. 이 같은 신앙교육이 지금의 메르켈을 있게 한 바탕이 됐다. 공식석상에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메르켈 총리가 정치적 보수성향 가운데서도 포용적 난민정책을 펼칠 수 있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은 저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며, 더 나아가 이를 통하여 희망을 안겨주고, 저를 격려할 따름”이라고 신앙고백을 한 바 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이 땅에서 펼쳐나가겠다는 자세가 기독교정치인의 자세라는 그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죽음 앞에서도 “감사” 신앙의 귀감 지미 카터

▲ 지미 카터

미국 제39대 대통령을 역임한 지미 카터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지도자로, 은퇴 후에도 평화를 위해 활약하며 전 세계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가 지난 8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암이 재발해 뇌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올해 나이 91세를 감안하면 절망적인 진단이었다. 

하지만 카터는 자신의 생사여부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고백하며 “멋진 인생이었고 감사한 삶이었다”고 고백해 큰 울림을 전했다. 

이 고백 이후 카터가 직접 가르쳐온 조지아주 마라나타침례교회 성경교실에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난 12월 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카터는 지난 6일 같은 성경교실에서 자신의 암 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MRI 정밀검사 결과를 발표한 것. 암 치료를 맡았던 애모리대 의료진이 차례에 걸쳐 신약을 처방하고 진료한 후 나온 결과다. 성경공부에 참석한 이들은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내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이라는 미 유력지의 평가를 받은 지미 카터는 분쟁지역, 특히 남북대결이 극에 치달을 때도 이를 완화하는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동성애·봉은사역 논란 가중한 박원순 시장

▲ 박원순

올해 기독교계는 ‘동성애’와 ‘봉은사역명’ 문제와 관련해 큰 홍역을 치렀다. 논란의 중심에는 서울시의 실질적 행정집행권자인 박원순 시장이 있었다. 특히 지난 6월 서울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서울광장에서 동성애자들의 문화축제인 ‘퀴어축제’가 개최되면서 이를 허가한 서울시에 대한 반발이 일었다. 더욱이 박원순 시장이 작년 10월 방미했을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우호적 시각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또 서울지하철 9호선 코엑스역명이 봉은사역으로 확정·고시된 사실이 올해 1월 알려지면서 실질적 허가자인 박원순 시장에 대한 논란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욱이 박 시장이 봉은사 미래위원장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봉은사와 특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기독교계가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퀴어축제의 서울광장 허가 철회를 촉구하자 박 시장은 “동성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로 생각하거나,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또 유럽 등의 경우 나라마다 동성애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고 주장하며,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봉은사역명과 관련해서도 강남구청과 서울시지명위원회가 결정한 문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박 시장의 종교편향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동성애자에서 ‘탈 동성애’ 리더로 이요나 목사

▲ 이요나

과거 동성애자에서 오늘날 크리스천 동성애자들의 상담과 탈동성애를 위해 일하고 있는 홀리라이프의 이요나 목사는 올해 열린 퀴어축제 현장에서 존재감을 발했다. 특히 동성애 축제를 앞두고 원색적인 비난이나 무조건적인 반대운동이 아닌 문화적 접근을 강조하는 등, 교회와 동성애 옹호측 모두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요란했던 퀴어축제 후 이요나 목사는 진보논객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와 SNS상에서 설전을 벌여 퀴어축제 당시보다 더 큰 이슈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설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욕설과 비방이 도를 넘었고, 이 모습은 온라인으로 전세계에 공개됐다.

이 목사의 사역을 주의 깊게 지켜봐 온 이들은 진중권 교수와의 비방전을 관전하며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앞으로 한국교회에 더욱 큰 도전으로 다가올 동성애의 물결 앞에서 이요나 목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 목사는 퀴어축제 이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반대운동을 구식으로 하니까 ‘개독교’ 소리를 듣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청년들과 함께 모여서 ‘같이 가자’, ‘함께 가자’ 식의 메시지를 전하는 쪽으로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흥운동의 거목 청파 이만신 목사

▲ 이만신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역사 가운데 초석을 다졌던 영원한 부흥사, 청파 이만신 목사가 지난 2월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만신 목사는 1929년 전남 신안군 증도가 고향으로, 신안군은 6.25 때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의 복음의 씨앗이 심겨진 곳이기도 하다. 이 목사는 바로 이곳에서 어머니를 따라 신앙을 키웠다. 

서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이 목사는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다 1963년 삼각산에 올라가 40일 금식기도 이후 이 목사는 초교파적 부흥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특히 1970~80년대 대규모 성회 때마다 열정적으로 전한 복음의 메시지는 참석한 교인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이 목사는 교단 총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호산나선교회 대표회장, 종교지도자협의회 의장 등 교계 안팎에서 지도자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2000년 중앙성결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된 후에도 후배들을 돕는 선배 목회자로 사역해왔다.

부흥운동의 대부이자 연합운동의 산증인이었던 이만신 목사는 호남 목회자들의 맏형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그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조용한 리더십의 새로운 돌풍, 이찬수 목사

▲ 이찬수

한국교회에 존경할만한 목회자가 없다는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조용한 리더십으로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목회자가 있다. 지난 10월 ‘시사저널’이 조사한 종교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 2년 연속 선정된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다. 사랑의교회 부목사 출신인 이 목사는 2002년 분당우리교회를 개척하고 2만 여명의 성도가 다니는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그는 2012년 주일예배 중 10년 후 대형교회를 분립해 작은 교회를 돕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국교회 안팎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또 650억 원 가량을 들여 매입한 건물도 10년 뒤에 되팔아 차익금을 한국교회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양극화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자립교회를 돕고, 사회적 신뢰도가 악화된 한국교회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고취시키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분당우리교회는 소외된 이웃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성남시와 긴급구호 협약을 맺고 긴급 위기 저소득 가구에 교회 예산으로 100만원 이내 무이자·무담보 대출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찬수 목사의 ‘섬김의 리더십’이 지역사회 계층에 대한 섬김으로 교회 사역 전반에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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