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방어하는 글로 국가에 대한 충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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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방어하는 글로 국가에 대한 충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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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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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변증가들의 신앙고백
▲ 조병하 교수

2세기 초 로마제국 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종교적 소수집단에 대항하여 근거 없는 중상모략을 행했고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중상모략에 잠잠하지 않았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의 글 ‘연대기’(15,44,2-5)에서 64년 7월에 있었던 로마 화제에 대해 네로황제가 책임전가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고 묘사했다. 그리스도인들을 “교육받지 못한 무리들, 수치스러운 행위들 때문에 혐오스럽고 속물들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이들이 억압을 받아도 “유해한 미신”은 후에 다시 솟아난다고 서술하고 있다.


109년에서 113년까지 “총독의 전권을 지닌” 황제의 사절로 소아시아 비투니아와 폰투스에 파견됐던 프리니우스가 트라이야누스황제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를 심판했던 심판결과를 보고하는 편지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그리스도교의 예배에 대해 이교도의 입에서 우리들에게 첫 번째로 알려줬던 보고를 이 편지에서 접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정해진 날 해뜨기 전에 함께 모여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에게 교창으로 찬양했고, 그리고 하나의 서약으로 의무를 지웠습니다. 즉, 그 어떤 범죄를 위해 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도둑질, 약탈, 간음, 부정[과 같은 범죄]를 중단하고 맡겨진 물건을 감추지 않은 것을 서약했습니다. 그 후에 그들의 관례대로 흩어지는 일이 있었고, 그리고 [후에] 물론 온전히 일반적이고 순수한 음식을 먹기 위하여 다시 모였습니다.” 또한 프리니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의 재판에서 그들이 “열등하고 무절제한 미신들”을 섬긴다는 것밖에는 찾은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뿐만 아니라 이교도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종교의식에 따른 영아 살해자들’, ‘근친상간하는 자들’, ‘재앙의 원인인 자들’ 등으로 조롱하고 비난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들의 신앙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변증하기 시작했다. 황제에 대한 숭배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던 소아시아지역에서 더 많은 변증가들이 나왔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들의 세계와 국가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항상 충돌을 삼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 위해 그들이 쓴 변증서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우선 그리스도교를 방어하는 글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관청의 보호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도덕적인 안심을 강조했다. 가장 오랜 변증서는 123/4년경 혹은 129년경에 크바드라투스에 의해 쓰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시대(160-180)로부터 유래했다. 밀티아데스, 히에라폴리스의 아폴리나리스, 사르테스의 멜리토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문헌적 변증서를 들 수 있는데 사람들이 ‘미개한’ 원시 철학이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 타치아누스(165년 이후)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참된 철학’이라고 변증했고, 그리스도인들이 헬라인들과 유대인들 옆에 ‘세 번째 종족’이라고 아리스티데스(약 125-128), 아테나고라스(약 177년경)는 주장했다. 그러나 변증가로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은 순교자 유스티누스(약 150/155)이다. 그리고 유스티누스의 주장에 대항해 ‘참다운 로고스’를 쓴 이교도 켈소스(176-178년?)의 주장은 헬라교부인 오리게네스에 의하여 253년경에 ‘켈소스에 대항하여’라는 글로 변증하게 됐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대표적인 변증가 이다. 150년경 쯤 되었을 때는 유대교로부터 그리스도교가 분리됐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로부터 대부분 떠나게 되고 이방인들 중심의 그리스도교가 됐다. 그러므로 유스티누스는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변증해야 했는데 핵심논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었고, 또한 이교도들에 대해 변증하기 위해 두 편의 ‘변증서’를 썼고 여기에서 주요한 논제는 ‘로고스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글들을 통해 우리들은 다양한 신앙고백의 내용들이 전승된 것을 살필 수 있고 삼항의 신앙고백의 형성을 발견한다.(제1변증서, 13장)

“우리들은 확실히 신을 부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 온 세상의 창조자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우리들의 이러한 가르침들 안에 있고 게다가 낳아지셨던, 그리고 티베리우스 황제시기에 유대 지역 총독이었던 폰티우스 필라투스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고 그리고 그를 두 번째 위치에, 그리고 정당하게 예언의 영을 세 번째 위치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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