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없는 삶은 깨어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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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없는 삶은 깨어있는 삶”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02.10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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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환연 초대 사무총장 김영락 목사
▲ 2015 자연과 함께하는 기도모임에서 김영락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기독교 환경운동연대 초대 사무총장을 지내고 지금은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수도원 사역을 하고 있는 김영락 목사. 김 목사는 지난 2005년부터 ‘자발적인 가난’을 선언하며 몸소 실천해오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시 관악구 신양교회에서 열린 ‘2015년 봄맞이 자연과 함께하는 기도모임’의 설교자로 참석한 김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단아한 개량한복 차림에 보기 좋게 패인 주름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년처럼 맑은 눈이었다.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수도원 사역 덕분일까. 김 목사에게서 치열한 도시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전기가 없다. 밤에는 호롱불을 쓰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해먹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전기가 없는 삶’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김영락 목사는 전기가 없는 가장 큰 차이로 “냉장고를 쓸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김 목사는 냉장고가 없는 삶을 ‘깨어 있는 삶’이라고 말했다.

“냉장고를 대신해 굴을 팠습니다. 거기에 음식을 저장을 하죠. 요즘 같은 겨울은 세상이 냉장고나 마찬가지지만 여름은 좀 이야기가 다릅니다. 음식물을 오래 저장하지 못하죠. 하지만 이게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밭에서 막 자란 채소를 그날그날 수확해서 가장 신선한 상태로 먹게 되죠. 냉장고가 없으면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걸 언제까지 먹어야하는지 관심을 가져야만 하죠. 오히려 냉장고가 있어도 넣어두고 썩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처럼 가난한 삶은 깨어있는 삶이기도 합니다.”

김 목사에 따르면 가난한 삶은 영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한 삶을 의미하고 단순한 삶은 더 깊은 기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사실 김 목사 자신도 편리함이 싫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저 행복을 좇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사는 제게 현실도피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제가 믿기에는 이것은 현실도피가 아니고 영적인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일과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돈이 시키는 대로 하잖아요? 물신, 맘몬주의가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제가 실천하는 가난은 맘몬이 지배하는 이 시대와의 싸움입니다.”

김 목사는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덜 의지하고, 하나님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

반면 가난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밖에 없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면 먹을 게 없다든지 몸이 아플때 돈으로 다 해결이 가능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가급적이면 자연에서 채집한 식재료를 통해 식사를 해결하고 생활 속에서도 공산품 사용을 자제한다. 가령 화장실에서도 화장지를 사용하기보다는 나뭇잎을 사용한다. 이 같은 실천이 얼마나 효율적이냐를 따지자면 별반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는 이런 모든 작은 행동들마저도 하나의 기도라고 말한다.

“이 같은 불편이 가져다주는 환경문제 해결의 효율성이 얼마나 되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은 것 하나하나를 지키는 자체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아온 지 벌써 15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은 가난인 동시에 고난이기도 합니다. 고난은 또 십자가를 뜻하지요. 사람들은 죽는 것이 두려워서 가난을 무서워합니다. 병원이 없고 식량이 없어서 죽을까봐 두려운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삶은 목숨을 얻고자 하지 않는 십자가 신앙을 뜻합니다. 지난해 일어난 세월호 사건도 결국 돈 때문에 생긴 것이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 신앙에서 멀어져서 편하려고 하고, 부유하려고 하고, 남들보다 잘 살려고 합니다. 십자가가 십자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끝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 목사는 “가난한 자에게는 분명한 복이 있다”는 누가복음 말씀을 거듭 강조했다. 오히려 “나 혼자만 행복을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교회를 향해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세상과 똑같이 성장이나 물질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무엇보다 물질 앞에 바로 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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