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눈으로 전쟁기록 하고 싶었다"-'이라크 인간방패' 임영신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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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눈으로 전쟁기록 하고 싶었다"-'이라크 인간방패' 임영신사모
  • 승인 2003.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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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눈으로, 죽어가고 빼앗기는 자의 눈으로 전쟁을 기록하고 전하고 싶다. 그들이 위험할 때 우리도 위험을 감수하며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정에 불과하다.

기독인이기 때문에 반전평화활동을 결심하게 됐다는 임씨는 이 두 말을 시종 강조했다. 그녀는 이라크 바그다드 요르단 등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지가 많다며 하나님의 섭리와 정반대로 숱한 피들이 땅을 적시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다시한번 평화운동의 이유를 강조했다.

그녀는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선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라크인과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 곧 참된 연대가 바로 선교라고.

그녀가 이라크로 들어가기 전 주여 어디 계십니까?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내가 어떻게 상처받고 죽어가는지 그리고 십자가가 어떻게 서 있는 지 보라고 말씀하셨어요라며 하나님께서 이라크인의 죽음과 신음을 듣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녀는 공포 영화 심지어 국내 TV에서 상영됐던 전설의 고향 음악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하루에도 수십 명이 팔 다리가 잘리거나 죽어가는 전쟁터의 한 가운데서 평화를 부르짖으며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부름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의 행동하는 신앙의 근간이 됐던 것은 두레연구원에서의 바닥에 설 수 있는 일꾼(지도자)에 대한 많은 고민 덕분이었다.

그녀는 소명과 헌신을 통해 자기를 비우는 물음에 직면해봐야 하고 바닥에 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더불어 하나님 앞에 서는 영성, 하나님이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바닥에 설 수 있는 신앙에 대해 특히 강조했다.

그러나 두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의 쉽지 않았던 평화를 위한 출국은 남편의 결단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편과 아이가 있어 결정이 쉽진 않았다.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바를 얘기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르는 길이라면 사람이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라크 현장에서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두 자녀의 요구였다. 엄마 이라크 아이들만 돌보지 말고 우리도 돌봐줘요라는 시원(여·4)이의 울음섞인 목소리. 인간방패는 하지마세요. 그리고 폭탄과 모래바람도 잘 피해야 해요.라며 엄마를 걱정하는 늘봄(6)이.

그러나 입국 후 한국에서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뉴스를 통해 비춰지는 죽어가는 이라크인들의 고통과 신음소리였다.

그녀는 입국 2주 만인 지난 12일 이라크로 다시 출국했다. 임씨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뛰어 넘는 영성이 중요하다며 현장 가장 깊이 설 수 있는 신앙인이 바로 크리스천임을 강조했다. 처음 출국 당시 동의했던 남편 이도영목사(34·안산동산교회 부목사)는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길을 인도하시면 다시 나가도 좋다며 아내의 강직한 뜻을 또 한번 받아들였다.

현재 이라크는 한마디로 아비규환이다. 마취제가 부족해 마취도 하지 못하고 절단수술을 하고 있다. 수천명의 부상자들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그들을 도우려면 바로 지금 들어가야 한다며 한시라도 서둘러 현장에 가고 싶다는 임영신씨.

이라크에서 그녀는 평화의 증언자 로 다시 활동한다. 평화의 증언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미국 CNN방송과 알자지라 방송의 시각차는 크다. 미국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상처입은 자들의 입과 시각에서 전쟁보고서를 작성하고 싶다는 것이 임씨의 목표이자 다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쟁 전, 전쟁 진행 기간, 전쟁 후의 기록을 토대로 미국과 영국을 국제 형사 재판소에 전범으로 제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임씨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모인 반전평화 운동가(평화의 증언자)들은 전쟁이 발발하기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어느 새 임씨는 강연을 하기로 한 성공회대에 도착해 강단 위에 서 있었다. 강연을 시작한 지 3분여가 지났을까? 유난히 큰 그녀의 눈에서 두줄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번에 이라크로 재출국 하게되면 언제 한국땅을 밟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기독인으로서 그리고 평화운동가로서 목숨을 건 채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 그녀가 시끄러운 지하철 안에서 소리 높였던 평화운동은 영성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font size="3" color="00CC00“>이승국기자(sklee@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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