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를 벗어나 카이로스로 돌아가자
상태바
크로노스를 벗어나 카이로스로 돌아가자
  • 운영자
  • 승인 2014.12.24 1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소강석 목사 / 새에덴교회

어느덧 2014년 마지막 송년을 맞고 있다. 시간은 마술사와 같은 마력을 발휘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인듯 하였는데 완전한 겨울이 되었다.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추운 겨울이 되어 나무들이 완전히 옷을 벗어 버렸다. 아니, 앙상한 가지 위에 흰 눈을 꽃처럼 달고 있다. 나도 옛날에는 시간이 안 가서 애를 달았을 때가 있었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개척 담임목회를 시작하였기에 연소하게 보이지 않고 중후하게 보이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래서 20대에는 30대처럼, 30대에는 40대처럼 보이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덧 50대 초반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로 60대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의 덧없음과 신속함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따금씩 크로노스적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그것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아무런 의미 없이 단순하게 흘러가는 물리적이며 객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접목된 정신적이며 주관적인 시간을 뜻한다. 1980년대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이때 말하는 ‘순간’은 자신의 삶을 변혁시키는 새로운 시간적 의미가 발화되는 카이로스적인 시간이다.

2000년대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문구가 나왔다. 이때 생각하는 나이 또한 무의미한 크로노스를 초월하여 가치 있는 카이로스적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시간의 변화다. 크로노스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삶의 목적이 자기에게 있다. 그저 하루 24시간을 육신의 편안함과 욕망만을 추구하며 흘려보낸다. 그러나 카이로스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살아간다.

아무리 건강 100세 시대를 산다할지라도 육체를 가지고 사는 한, 반드시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는 송년의 아쉬움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크로노스적 시간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인생무상과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카이로스적 삶을 살고 사명을 따라 의미 있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육체를 가지고 사는 한, 어찌 송년의 아쉬움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카이로스적 시간관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의미 있고 가치가 있는,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성경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고 말씀하지 않는가(요한1서2:17). 그렇다. 크로노스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높은 탑을 쌓고 어마어마한 빌딩을 짓는 업적을 남겼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반드시 인생무상과 삶의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카이로스적 삶을 사는 사람, 즉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오직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세월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그저 신년도, 송년도 감사고 순간순간이 새롭기만 하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하다고 말씀한 것이다. 그대는 한 해를 크로노스적으로 살아왔는가, 카이로스적으로 살아왔는가. 크로노스적으로 살아왔다면 다시 돌이키자. 2015년, 다가오는 새해부터는 오직 카이로스적 삶을 살겠노라고. 한국교회와 성도여, 이제, 크로노스를 벗어나 카이로스의 세계로 들어가자. 우리의 욕망을 따라 바벨탑을 쌓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직 제단을 쌓자. 오직 섬김의 제단, 희생의 제단, 사명의 제단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