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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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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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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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여상기 목사(예수로교회)

하늘 아래 땅이 있고 땅 위에 길이 있어 사람들은 하늘가는 길을 찾아 땅위에서 길을 걷는다.  알고 가는 길이 있고 믿고 가는 길이 있어, 처음 가는 길은 믿고 가고 다음 가는 길은 알고 간다. 안 보이는 길은 몰라서 가지 못하고, 보이는 길은 믿지 못해서 가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 위에서 길을 묻고 길가에서 서성인다. 앞선 사람을 따라 걷고, 옆선 사람과 함께 걸으며, 뒤선 사람을 재며 걸어간다. 길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들고, 사람들은 다시 길을 만든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길이 되어 누구를 따라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속도와 방향이 사뭇 달라지기 마련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애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민21:4) 불평하거나 원망한다고 해서 길이 바뀌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가는 젖소는 어미를 찾는 송아지의 울음을 뒤로해야 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묵묵히 대로를 걸어 벧세메스에 이르러야 한다. 길은 가고 싶어 가는 길이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길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나아가는 과정이요 지나가는 기회다.

예루살렘과 로마와 산티아고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선호하는 3대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Compostela)는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일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따라 이베리아의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 사도의 시신을 제자들이 빈 배에 태워 바다에 띄웠는데 놀랍게도 이베리아 해안까지 이르렀는데 시신이 조개껍데기에 싸여 잘 보존돼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가비는 산티아고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회복과 치유 그리고 기적과 부활의 상징으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노란 조가비와 화살표 방향 표시를 잘 기억할 것이다.

대개 프랑스 길과 스페인 길 그리고 영국 길과 포르투갈 길로 구분하여 일정에 따라 400~800키로의 거리를 20~40일 이상 혼자 걸어서 완주하는 만만치 않은 순례의 길을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Saint James Way)라고 한다. 반드시 종교적 순례만이 아니라 개인적 명상이나 건강을 위한 수련의 길로 혹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망의 짐들을 내려놓는 비움의 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버림이 없이는 가벼움을 경험할 수 없다. 무거운 짐진 죄를 내려놓고 복음의 진리로 자유를 누리는 순례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정으로 가든, 노란 조가비와 화살표 방향을 따라 걸으면 산티아고 성당에 이르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순례 길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고요함으로 9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길 위에서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와 회복과 치유의 행복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왔다. 길은 원래 길이 아니다. 누군가 먼저 다닌 길을 다시 걸으면 길이 된다. 예수를 믿으면 길 위에서 길을 묻지 않는다. 고 장기려 박사는 평생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살고 간 한국의 슈바이처다. 제자들이 새해 인사를 오면 “올해는 자네들 나처럼 한번 살아보게!”라고 권면했다고 한다. 스승의 의중을 잘 아는 제자들은 웃으면서 “선생처럼 살면 바보가 되게요?”라고 응대하면 “여보게, 바보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평생 바보로 살면 인생을 성공한 것이라네.”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후진들에게 “나처럼 살아보게”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길은 삶이 되어야 길이 된다. 십자가는 묵상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대상이다. 십자가는 어려운 고역이 아니라 가장 쉽고 가벼운 멍에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진리를 상식으로 간주하면 미로를 헤맨다. 성탄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길이요 십자가는 우리가 믿고 가야 할 부활의 길이다. 자신을 찾아 주님과 함께 하는(Searching myself with God) 경건의 여정을 결단하자. 부자의 곳간 열쇠는 너무 커서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다. 내려놓고 버리고 섬기고 나누자. 예수가 길이다.(민21:9)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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