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깊이, 그리고 넓게 세상 속으로
상태바
조금 더 깊이, 그리고 넓게 세상 속으로
  • 운영자
  • 승인 2014.11.12 1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Seerveld)의 개혁주의 미학 (27)
▲ 안용준 목사

우리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성경적 의미에서 일터는 하나님의 부르심(Beruf)의 터전이다. 일터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창조적인 활동 속에서 정당하면서도 품위 있는 소명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아시아에 있는 교회 개척자로 우리를 부르실 수 있다. 이 경우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어를 배울 때 신약성경의 학자나 복음주의자가 되기를 원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복잡한 대위법을 익히는 것을 힘들어 한다면, 아마도 하나님은 노래를 작곡하지 않도록 하시고 새로운 창조적 도구를 손에 쥐어줄 것이다.

이 은혜의 도구를 가지고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하는 그분의 종들은 역사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존 칼빈(John Calvin)은 가톨릭 미학이 소유한 전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혁주의 미학의 표준을 정초해 나갔다. 그는 성경에 계시된 은혜로 절대적이고 반박할 수 없는 하나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와 한스 로크마커(Hans Rookmaaker)는 칼빈 이후 개혁주의 미학을 더욱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이처럼 미래를 열어갔듯이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하는 인간의 역할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시어벨트에 따르면 우리는 심지어 이름 없는 작가, 민요가수, 마임 예술가들에게서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암시적(allusive) 방법들을 통하여 문화를 회복하게 하는 삶의 진실을 명시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의도에 조화롭게 설정되는 예술적 환경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어벨트의 표현대로 현대예술에 바람직한 희망의 미학을 구축하기를 하기를 소망한다면 시대를 바라보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비록 인간이 불순종으로 인한 엄청난 탈선의 결과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위대함의 근원을 소유하고 있다. 시어벨트가 깜깜한 암흑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갖게 되는 위로와 소망이 담긴 예술적 메시지를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온갖 죄악을 저지른 인간을 향해 용서의 구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처럼, 시어벨트는 시대를 바라보는 통렬한 슬픔의 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마음(grief)도 일종의 선지자적 행동이다. 세상의 수많은 지도자들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세상만사가 잘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슬픔으로 마음이 타는 듯한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정신에 영향을 줄 정도의 충격적인 일을 당하여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사회와 문화 예술에 닥친 재난을 보고 슬퍼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자이다. 눈물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의 표시이다. 눈물은 정말로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시며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참된 용기에서 나온다. 눈물은 하나님의 사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