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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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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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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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아버지가 내게 진 빚을 자네가 갚아 줄 수 있겠는가?”

‘아버지께서 못 갚으신 빚을 제게 청구하십니까?’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선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향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선린을 바라보는 듯 했다.

“자네 아버지는 신의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셨지.”

곽진언 씨의 말이 끝났을 때 선린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충격 받았다.

선린은 법적인 책임과 그의 아버지의 명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버지께서 빚이 있다면 제가 갚겠습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니었군.”

곽진언 씨가 선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린은 곽진언 씨가 쓴 일기장을 넘기며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기구한 것을 깨달았다.

“삶이란 것은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게. 나는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다네. 나는 어린 시절 그림에 심취하여 미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었지. 미를 추구하다보니 순수한 것을 바라게 되었지. 그러던 중 나는 아름다운 모델 하나를 발겼하였다네. 내가 그녀를 발견한 순간 나의 영혼은 오로지 그녀에게 몰두하게 되었다네. 그녀는 내가 본 여자 중 그처럼 미를 갖춘 사람은 처음이었다네. 나는 그녀를 화폭에 그리며 시간이 가는 줄 몰랐지. 나는 온갖 감언이설로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네.”
 

“은영 씨. 저는 은영 씨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급하게 데워진 물은 급하게 식을 수 있어요. 걱정입니다.”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으세요?”
“약속합니다.”

곽진언은 그녀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곧 곽진언은 생애의 첫번 째 여자를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꼭 있어야 할 무엇이 없었다. 그녀가 흐느끼면서 고백했다.

“그건 사고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습니다. 절 버리지 말아주세요.”

곽진언의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순결을 가진 여자야 해.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첫번 째의 여자가 필요해. 그게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질 당연한 권리가 아닌가.”
“약속을 버리실 거에요?”
“은영 씨가 나를 속였잖아요.”
“언제 저에게 과거를 묻기나 하셨어요?”
“나를 속인 사람하고는 약속 같은 것 지킬 의무가 없어요.”

곽진언은 흔들리는 갈대 같았다. 순수한 처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순수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별짓을 다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을 만났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세요?”
“나는 순결한 사람을 찾는 중입니다.”
“순결함이 행복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습니까?”
“저는 행복과 순결함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사항이시겠죠.”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청혼하시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곽진언은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순수한 것을 찾으며, 곽진언 자신은 더욱 더 추악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곽진언은 떠나버린 김은영을 백방으로 찾았다. 그녀는 아프리카 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녀가 그와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아직도 그의 귀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우리의 헤어짐은 서로가 더 나은 삶의 시작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곽진언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 행복의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 믿어야 할 사람을 믿지 않는 것,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불행한 것임을.”

 

곽진언 씨의 유언장이 공개되는 날이었다. 창조의집 사무실에는 유언장의 공개를 보기위해 사람들이 참석했다. 참석한 사람은 그의 딸 곽미연, 둘째 아들 곽후안, 변호사 백진승, 의사 정희선 등이었다. 그의 첫째 아들 곽동연은 해외에 출국해 참석할 수 없었다.

선린은 그의 소형 금고에서 곽진언 씨의 유언장을 꺼냈다. 참석한 모두가 침묵했다. 유언장이 든 봉투를 개봉하는 선린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법원에 상속포기를 한 장남과 차남에 대하여는 상속재산이 없었다. 그의 딸에 대해서는 법정지분을 상속토록 했다. 곽진언 씨는 그의 소유 농지에 대하여 진선린을 수탁자로 유언 신탁한 후 신탁등기를 종료했다.

(주)시온미래광학 구내식당에서 백설희와 김민정이 한 테불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백설희는 디자인실, 김민정은 무역부 소속이었다. 김민정이 백설희에게 회사 내에 떠도는 소식을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영농 법인을 만드는 것 알아?”
“그게 무슨 말인데?”
“선화리에 있는 소생언 농장을 영농법인으로 만든다는 소식 못 들었어?”
“거긴 선린 오빠가 맡아서 일하는 곳인데?”
“선린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어?”

설희는 자기보다 선린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선린 씨가 시온매래(주)와 우리 회사의 많은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래. 또 누군가로부터 농지를 신탁받아 영농법인을 설립하고 너희 아버지가 관리하신다는 거야.”

설희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설희는 선린을 가장 잘 안다고 하면서도 실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빅-뉴스다.”

설희는 김민정이 또 무슨 소리를 하는가 의아했다.

“선린 씨가 아프리카 동쪽 섬 마다가스카로 떠날 거래.”

선린은 민정이가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설희는 자신이 살아 온 지난날들이 마치 폐쇄된 공간에서 산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조직 속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조각배를 타고 바다로 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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