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르포] “할머니가 왜 자식이 없어요, 우리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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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르포] “할머니가 왜 자식이 없어요, 우리가 있잖아요!”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4.03.20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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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심는 NGO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의 도시락 배달
▲ 브레드 미니스트리스 봉사자들이 혼자 사는 할머니의 무릎을 살펴보고 있다. 촘촘히 모여 있는 쪽방촌의 모습과 다르게 어수선한 전깃줄 뒤로 다른 세상처럼 고층 아파트들이 위협스럽게 서 있다.

서울 용산구. 평평하게 낮은 집들 사이로 우뚝 솟은 주상복합 아파트를 볼 때마다 ‘저 아파트 주민들은 한강도 바로 내다 보이고, 전망이 좋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곧 마천루에 살지 않음에 오히려 더 감사하게 됐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와 쓰러져 갈 듯 서 있는 집, 쓰레기로 무장된 독거노인•노숙자•소외된 자들의 군락이었다. 아마도 주님은 매일 그들을 내려다보며 울고 계시진 않을까…….

3월의 어느 목요일,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흐렸다. 괜시리 마음조차 흐려질 것 같았는데 밥 짓는 냄새가, 시금치를 버무리는 고소한 참기름 향기가 코를 찌르고, 알록달록 색색의 도시락 바구니를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리고 밝고 힘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매주 목요일마다 용산구 일대 독거노인을 위해 사랑으로 밥 짓고 배달하는 서울 한강교회(담임목사:최낙규) NGO 단체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사무국장:박창규)의 주방이다.

대문 여는 거 자네만 알려줄게
브레드 미니스트리스는 매주 목요일 정오가 되면 용산구 쪽방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도시락과 빵을 나누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벌써 3년이 넘었다. 직접 방문하며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한 건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역에서 빵을 나누는 ‘사랑의 빵’ 나눔 행사에 나오지 못 할 만큼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독거노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사랑의 볕을 들이고 말벗이 되어주고자 매주 거르지 않고 가가호호 방문하고 있다.

1인당 1주일치의 밥과 반찬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싣고 나선 봉사자들은 용산 일대의 쪽방촌 지리를 훤하게 꿰고 있었다. 한강로동의 쪽방촌 일대, 세 평 남짓한 곳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반갑게 봉사자들을 맞았다.

▲ 정성껏 만든 도시락들. 밥뚜껑이 열리는 헤프닝도 가끔 있다. 그럴 땐 급하게 편의점에 달려간다.

“내가 이 시간이 되면 대문을 활짝 열고 밖에만 쳐다보고 있다니깐. 아이구 반가워라. 아이구 고마워라.”

새 바구니를 받고, 정갈하게 설거지한 빈 그릇이 담긴 바구니를 건넸다. 할머니는 다음주, 혹여나 자신이 집을 비울 경우 어떡하냐며 걱정했다. 무언가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할머니는 아들딸 같은 봉사자들에게 “내가 자네한테만 알려줄게, 이렇게 하면 대문이 열리니까 여기에다가 도시락 놓고 가져가면 돼”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이 더 푹 패이도록 활짝 웃으셨다. 그리고 모두가 손을 잡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했다.

빈 바구니를 들고 가는 봉사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손을 흔들었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할머니는 봉사자들을 배웅했다.

▲ 아무도 없는 폐허 끝 쪽방, 모두가 떠난 빈 집들 사이 좁은 골목. 이 길 끝 구석에 독거노인이 산다.

죽기는 왜 죽어요? 우리가 있잖아요
독거노인 대부분은 주방시설도 미비한 작은 쪽방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2평 남짓,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창문 하나 뿐인 아주 작은 방. 어르신들은 브레드 미니스트리스에서 제공하는 도시락 반찬을 2~3일에 나누어 드신다. 그리고 반찬을 다 먹고 빈 그릇을 바구니에 둘 때부터 목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맛있는 도시락도 도시락이지만, 매주 만나는 봉사자들의 목소리와 따뜻한 손길이 그립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누군가와 대화 한 마디 오가지 않기에, 자식같은 봉사자들이 더 반갑고 눈물 겨웠다.

“내가 한강물에 몇 번이나 다녀왔는 지 몰라. 자식 안 낳고 혼자 사는 게 왜이리 서러운지, 그래도 내가 이렇게 반찬해다주는 자식같은 사람들 있어 산다네.”

갈월동에 아무 가족 없이 혼자 사는 할머니는 눈물을 닦아내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봉사자들은 “할머니가 왜 혼자세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다 아들이고 딸인데, 얼마나 많은 자식들을 두셨는데요. 너무 서러워 마세요, 할머니”라며 할머니를 부둥켜 안았다.

▲ 쓰레기로 무장된 독거노인의 집. 폐지, 폐타이어, 빈 깡통, 녹슨 철근 등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봉사자가 빈 도시락을 들고 나오고 있다.

덕구야, 이젠 좀 알아봐줘
컹! 컹! 컹!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짖었다. 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잡동사니, 아니 쓰레기로 무장한 커다란 더미에서 차우차우 개 한 마리가 봉사자들을 향해 열심히 짖어댔다. 꼬리를 힘껏 흔들며.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한 분이 웃으며 걸어나왔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할아버지는 마치 먼 곳을 항해하고 돌아와 정박한 듯 보이는 그 집의 선장같았다.

할아버지와 덕구는 봉사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봉사자들은 덕구를 쓰다듬으며 “잘 지냈니? 그새 많이 컸구나”하며 안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말 수가 적었다. 그저 반갑고 고마움이 깊이 묻어나는 미소만 지을 뿐.

다같이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덕구도 기도하는 걸 알아채는 듯 가만히 앉아 꼬리만 흔들어 댔다.
열 가구의 어르신들을 다 만나고나니 갓 만들었던 도시락 바구니에는 어느새 빈 통만 가득했다.

곳곳의 어르신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 쪽방의 삶은 살만 하다는 듯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달그락, 트렁크에 쌓인 빈 도시락통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 카메라를 들이대자 덕구는 개구진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 주가 지날수록 더 듬직하게 커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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