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없이 만드는 십자가는 나무막대기에 불과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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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없이 만드는 십자가는 나무막대기에 불과할 뿐이에요”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4.03.18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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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만드는 사람 / 빌립공방 대표 소목장 김명원 권사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 소목장(小木匠) 김명원 권사(강화 영은교회)의 손은 거칠었다. 악수를 하는 굵은 손가락 마디는 수십 년 동안 나무만 만지며 살아왔던 소목장의 노역을 느끼게 했지만, 나무의 향기가 배어 있는 따뜻하고 두터운 손이었다.

김포 들녘에 자리잡은 빌립공방. 공방이라고 해야 작은 비닐하우스 두 동이 전부다. 공방 입구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진 다릅나무와 참죽, 느티나무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자연건조 중이란다. 작업장으로 들어섰다. 손수 깎아 만들어놓은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간결하게 흘러내리며 가로지른 두 개의 굵은 선. 투박한 듯 나뭇결 그대로 살아있는 질감이 주는 따뜻함은 꾸밈없이 사셨던 예수의 생활을 대변하는 듯 하다. 모두 제각각. 그 밑으로는 낡은 성경책이 펼쳐진 작은 기도상이 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4시간 정도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쓰다가 날이 밝으면 작업을 시작하죠.”
남들은 하루도 버거워할 일상이 벌써 8년이나 됐다.

한켠으로 벽에 걸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해 10월, 부산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때 선보였던 단청 문양 십자가. 색동옷을 입은 형상이다.

“총회 때 5백 점을 만들어서 납품했어요. 가로로 놓이는 한쪽에 단청 문양을 넣은 것인데, ‘한국적인 십자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3~4개월 정도 공을 들였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만들어 가져가는 모습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 간벌용으로 버려지는 나무가 십자가로

작업실 밖 건조장으로 나온 김 권사가 괭이 모양의 도구를 들고 거칠고 두꺼운 다릅나무 껍질을 훑어 내린다. ‘쓱쓱….’ 거침 없는 손길에 나무의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나무속을 둘러싸고 있는 이 하얀 부분 때문에 다릅나무로 만든 십자가는 유난히 아름답다.

나무는 직접 차를 몰고 가 강원도 강릉 쪽에서 구해 온다. 지금까지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간벌용으로 솎아 낸 것을 구입해 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성경의 이치를 여기서 발견하죠. 정말 버린 나무들이 여기 와서 십자가로 태어나 사랑 받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거기 있으면 버려지거나, 땔감용으로 팔리게 되는 게 대부분인데, 버려질 그 나무가 십자가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 하나를 제작하는 데 이틀 정도 걸린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나무를 다듬고 엇갈릴 부분에 홈을 파고, 맞추어 조립한 뒤 사포질을 하고,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리는 칠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나무는 최소한 1년은 말려야 한다. 4년 정도 건조한 것이 가장 좋지만 아직 건조장을 마련할 공간이 넉넉하지 못하다. 목걸이, 탁상용, 벽걸이, 가정용, 소규모 예배실용, 예배당 강단용을 비롯해 교회와 성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규격과 종류의 십자가가 모두 김 권사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서 버려지는 건 톱밥밖에 없어요. 남들은 꼬불꼬불한 가지와 굽은 부분은 대부분 잘라내 버리지만 저는 다 사용해요. 나무 하나를 구입하면 95% 정도를 사용하는데, 굽은 것은 굽은 대로, 뿌리를 빼고는 모두 사용하는 거죠. 7.5밀리미터부터 5미터 크기의 십자가까지 제작합니다.”

얇은 가지는 십자가에 박힌 못이 되기도 하고, 목걸이가 되기도 한다. 조금 굵은 것은 탁상용, 우람한 나무들은 성전용 십자가로 탄생한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십자가는 정형화된 것이 없다. 치수, 무게, 디자인, 나뭇결 모두가 다르다. 나무가 주는 감대로, 손이 가는 대로 만든다.

갑자기 작업실로 들어간 김 권사가 십자가 목걸이를 한 움큼 가지고 나온다. 5센티미터 크기. 이것도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들었단다.

# 잘 나가던 소목장이 십자가 만드는 빌립으로

소목장 김 권사는 IMF 전까지 고가구 만드는 일을 했다. 실력이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사업 실패 후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가 강화까지 들어갔다. 그나마 골동품의 명맥이 남아있던 곳이 강화였다. 여기서 7~8년 정도 일했다. 일하면서 동네에 있는 교회로 새벽기도를 다녔는데, 이 교회가 지금 출석하는 강화 영은교회다. 그 교회에서 담임 정창석 목사를 만났다. 반갑게 맞아주었다.

“새벽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저를 불렀어요. 가보니 목사님이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고 계신 거예요. 제가 목수라고 하니까 나더러 공장에서 만들어보라고 하더군요.”

이게 김 권사를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이후 불교 신자였던 골동품 가게 사장과 결별하고 지금까지 꼼짝없이 이 일만 한다.

“목사님 때문에 십자가를 만들게 됐지만 ‘내 일이다’ 싶었어요. 그렇다고 십자가를 만드는 일이 돈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돈을 가져다 주기는커녕 돈을 써대기만 하니 아내가 좋아하지도 않았구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일하니까 길이 열렸다. 여기저기 소문이 나면서 마산, 진해, 양산, 인천, 강화, 서울 등지에서 십자가 전시회를 열었다. 십자가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과 전시회에 대한 요청도 들어왔다.

“처음에는 모르고 만들었는데 지금은 공부를 많이 합니다. 제대로 십자가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김 권사는 지난 2008년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십자가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1천5백여 점 정도를 전시하면서 ‘이게 팔릴까?’ 하고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전시품 대부분이 팔려나갔다. 오는 9월경에는 안양대학교에서 십자가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이게 잘 마무리되면 독일에서의 전시회까지 연결돼, 한국의 소나무 향기가 진득하게 밴 십자가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 십자가 체험장과 전시장에 대한 꿈

소목장 김 권사는 강화에 작은 폐교 하나를 임대해 십자가 체험장과 전시장을 함께 열 수 있는 공간을 열 계획이다. 그렇다고 여윳돈이 있어서 세운 계획은 아니다. 여유보다는 오히려 통장 잔고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몇 해 전부터 이 일을 추진했는데 일이 틀어져 아쉬움이 크지만, 하나님께서 언젠가 꼭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제 남은 생, 기독교 문화와 십자가 문화를 확산시키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십자가 체험장만큼은 꼭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 가고 싶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자를 택하사 일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붙들고 있다. 십자가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십자가 체험장과 전시장을 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기도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 없이 만들어지는 십자가는 그저 나무막대기에 불과할 뿐이에요.”

김 권사는 천상 목수요, 소목장(小木匠)이다. 나무로 장, 롱, 사방탁자, 연상, 소반 등과 같은 작은 가구를 만들던 이 소목장이 성물을 만드는 빌립(必立)으로 태어났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던 평신도 선교사 빌립 집사처럼 되고 싶어서 공방 이름도 ‘빌립공방(070-7762-4139 / www.phillp.net / www.빌립.net)’이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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