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일깨우는 ‘소울 플레이어’의 연주 … 새해도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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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일깨우는 ‘소울 플레이어’의 연주 … 새해도 “브라보!”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01.16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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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피아니스트 조희준의 도전
▲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발달장애인 조희준 군의 연주는 권태 혹은 절망에 빠진 이들의 심장을 힘차게 일깨워주는 감동이 있다(한경닷컴 제공).

지난 해 11월 29일 밤, 한경닷컴이 주최한 ‘제9회 오케스트라의 신바람’ 공연이 열리고 있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때 이른 겨울 추위에 영하 5도로 뚝 떨어진 날씨지만 대극장에 있는 3천여명의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연주를 지켜보고 있다. 객석에서, 연주자도 아니면서도 긴장 탓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사람이 눈에 띈다.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희준 군의 아버지 조영 권사(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때론 웅장하게, 때론 경쾌하게 흘러가는 명곡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을, 조희준 군이 유려하게 연주하고 있다. 연주를 시작할 때와 끝낼 때, 기다릴 때를 지휘자와 호흡을 맞춰가며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발달장애(자폐증) 2급인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한경닷컴은 지난 여름 부터 KBS교향악단과 협연할 ‘소울 플레이어(Soul Player)’를 찾았다. ‘소울 플레이어’란 몸의 한계를 넘어 영혼을 울리는 연주자를 뜻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의 콘테스트에서 희준은 다른 여러 장애우들을 제치고 네티즌 투표에서 1등으로 뽑혔다. 그후 몇 달간 연습을 거쳐 오늘 무대에 오른 것.

드디어 연주가 끝났다. 아버지와 어머니(이금수 집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이어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브라보’ 함성이 대극장을 메우자, 비로소 한숨은 탄성으로 바뀐다. 아들과 사진을 찍겠다고 줄 선 관객들을 보자 코끝이 찡해온다.

아들을 위해 기독교로 개종
“한 살 두 살 때까지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어요. 귀엽고 예뻤죠. 그런데 서너살 되면서 말이 늦더라고요. 좀 이상해서 병원을 갔는데, 자폐증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충격이었죠.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 결함은 유전된다는 것으로만 알아서, 저나 처가 쪽이나 그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병원을 다니면서 오히려 절망감은 더 깊어갔다.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그때 돌파구가 ‘믿음’이었다. 원래 불교 집안이었던 조 권사와 이 집사는 하나님을 붙들었다. 기도하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충성스럽게 했다.

“지금 장애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상당히 양호한 상태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을 긍휼히 여겨 주신 것이죠. 당시 절망 가운데 흐트러져있던 저도 바른 길을 찾았으니까요. 희준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저희를 찾아오셨다고 믿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친 희준은 현재 세종시에 있는 당암교회에서 예배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다. 벌써 8년째다. 처음엔 엇박자가 나기도 했다.

어느 날 아버지 조영 권사는 그런 아들 곁으로 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잠깐 쳤던 실력으로라도 아들을 격려하는 ‘화음’이 되고 싶었다. 아들은 그런 아빠 곁에서 찬송을 반주하고, 청년들과 CCM으로 찬양하며 언제나 싱글벙글이다.

▲ 교회 예배 때 반주하는 조희준 군.

자폐증 이겨낸 도전과 노력
“신앙생활 덕분에 희준이가 많이 마음이 안정되어 지금까지 공부를 잘 해왔어요. 대전예고를 졸업하고,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를 졸업했습니다. 또 스스로 노력을 엄청나게 해요. 피아노만 잘 친다고 졸업하는 게 아니잖아요.”

시험 전날 밤, 방에서 끙끙대고 공부하는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 나온다. 아침에 가보면 아직도 책상 앞에 앉아있다. 그런 아들이 짠하면서도 대견하다.

그런 노력 끝에 사회복지를 부전공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땄다. 본인의 노력, 가족의 사랑, 여기에 하나님의 도움까지, 3박자의 힘일까? 희준은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 음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경연대회에서 좋은 열매를 거두어 왔다.

“처음엔 미술을 가르쳤는데, 혼자서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어째 좀 처량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소질도 있었어요. 눈으로 악보를 보고, 귀로 듣고, 또 손가락 운동신경에도 자극이 되어 좋고, 그래서 피아노가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희준은 무엇이든지 열심이다. 마음이 항상 뜨겁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그 열정의 불씨가 된다. 부모님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부모님 바라기’인 희준이가 제일 싫어하는 건, 당연히 부모님의 근심어린 표정.

아빠 곁에 슬며시 다가와 흰 머리카락을 만지며 서글퍼하는 희준을 볼 때마다 아빠의 마음은 먹먹해진다. 부모님이 늙는 것이 가장 싫단다. 그래서 희준이가 말 안들을 때 특효약은, ‘너 그러면 엄마, 아빠 흰머리 더 생긴다’, 라는 말이다.

▲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서.

부모의 흰머리가 싫은 아들
“제가 그래요. 아빠도 언젠가 할아버지가 되고 그럴 텐데, 너 혼자서도 잘 살아야지, 지금처럼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면, 희준이가 그래요. 엄아, 아빠는 100살까지 살거라고요. 희준이만한 효자도 없을 거예요.”

희준이를 위해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곤 했지만 요즘은 여의치 않아 잘 못하고 있다는 조 권사는, 희준이 때문에 괴로운 날보다는 즐거운 날이 더 많았다고 회상한다. 한 번도 부모를 직접적으로 괴롭게 한 적이 없다. 다만 능력이 못 미쳐서 안타까운 적만 있었을 뿐이다.

힘없이 앉아있는 날이면, 살갑게 다가와 부모를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스물일곱 살 희준. 매일 밤마다 “엄마, 아빠 잘 주무시라”고 이불을 깔아준다. 부모는 그런 희준을 볼 때마다 힘을 얻는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다. 사회생활도, 가정생활도, 오히려 희준이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희준이가 아니었으면 신앙생활을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희준이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죠. 이제 조금 신앙이 자라고 보니, 세상에 소원을 기도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은데 전부 자기 소원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렇게 될 수도 없겠지만, 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 세상의 질서가 혼란스럽게 되겠지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적절한 시기에 꼭 필요한 순간에 이뤄주시고 도와주시는 것 같아요.”

희준을 위한 기도의 응답, 그러면 과연 아버지 조 권사는 포기한 것일까?

“진행 중이지요, 진행 중. 저는 희준이가 장애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이 좋아졌고, 또 앞으로도 그 기도의 응답은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혼을 울리는 ‘소울 플레이어(Soul Player)’ 조희준 군. 이곳저곳에서 연주해 달라는 요청으로 연습에 바쁘다.

오늘도 그의 연주는 식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쳐진 친구들의 등을 도닥거려주며, 세상의 모든 멈춰선 ‘심장’들을 힘차게 두드려 다시 뛰게 하고 있다. 새해에도 그의 신나는 도전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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