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영적 아름다움을 선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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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영적 아름다움을 선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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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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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하라, 기도하라, 사고하라, 그리고 일하라 - 로크마커의 개혁주의 미학 (16)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가 아름다움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직접 그것을 경험할 때 더욱 기쁨이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이 올바른 믿음의 터전에서 출발하는 영성에 기초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 렘브란드, 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아무리 수학능력이 뛰어나고 훌륭한 지식을 소유한다 해도 그것이 지식에 그친다면 아름다움을 음미하거나 느낀다고 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작은 것에서 놀라운 질서를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의 섬세한 감각을 쫑긋 세운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감각은 우리의 인체 구조 안에서도 명료하게 드러난다. 예술 작품이 사랑할 만한 아름다운 소리와 색채, 형태, 구조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시고 이를 감상하도록 우리에게 미적 감각을 부여하신 은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선하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마디로 창조적 영감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옹달샘과 같다. 한때 이삭은 탁 트인 들판에 나가 소원을 가지고 묵상하기도 했다.

시편 가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던 그 아름다움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해주고 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자연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게 된다. 다윗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간절히 보기를 원했던 것이 여호와의 아름다움이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우신 하나님은 지으신 세계를 바라보고 즐거워하셨다.

성경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지으신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려고 사랑스레 바라보셨다. 그분은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지치고 무력한 이들, 참된 목자가 없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나인성의 과부를 보실 때, 혈루증 앓는 여인을 보실 때, 귀신 들려 있던 여인을 만나실 때, 배신한 베드로를 바라보실 때도 긍휼의 시선을 보내셨다.

최고로 아름다우신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문화 속으로 들어오셔서 한결 같은 시선을 보내시고 계시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영적 감각을 일깨우셔서 우레와 같은 생명의 음성을 들으며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온 인류를 위하여 바쳐진 가장 고귀한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의 탄생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이며 동시에 나 한사람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영적 사건이었다는 사실에 감격하게 된다.

로크마커의 미학에는 위와 같은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원리가 배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의 자유 안에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과 심지어 기독교를 적대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이다. 크리스천 예술가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로크마커에 따르면 “예술가는 사회 안에서 활동함으로써 삶을 영위할 만한 가치 있는 사역으로, 영적인 의미에서 풍요로움 뿐 아니라 심오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만드는” 자신의 몫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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