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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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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상 기목사•예수로교회

2014년 갑오년 새해 신춘원단이다. 갑(甲)은 청(靑), 오(午)는 말(馬)을 뜻하기에 60년 만에 찾아온 청마(靑馬)의 해란다. 지난해의 도행역시(倒行逆施)를 거울삼아 새해엔 희망찬 노말지세(弩末之勢)의 도약을 기원해본다. 중국 한(漢)나라 때 동중서(董仲舒)가 무제(武帝)에게 올린 글이다. “거문고 줄을 바꿔야 하는데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연주가라도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없으며 마땅히 개혁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어진 정치가도 잘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120년 전 갑오년은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갑오경장), 청일전쟁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급변의 해였다. 한말(韓末)의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 등은 부패한 조선왕조와 양반계급에 대한 민중의 반발이며, 누습에 젖은 수구파(守舊派)와 개화파의 혁신의 부르짖음이었다.

지금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압축을 통해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작금의 국제정세와 국내외 주변 정황은 쉽사리 가능한 개혁의 여지를 비좁게 만들고 있다. 여전히 기득권 체제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선이 사회의 모든 층위에서 국가를 두 개의 국민으로 분할하고 있다. 바야흐로 향후 20년 동안의 국제정세와 주변국의 총합적인 변화는 지난 100년간의 변화와 버금가는 격변의 정황이 예견되고 있다. 거문고 현의 줄을 조이다 줄이 끊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국내외의 얽히고 묶인 내우외환의 갈등구조를 입체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총론과 지혜가 필요하다. 어느 현자의 말대로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상처는 과거를 먹고 자라고, 꿈은 미래를 먹고 자란다.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과거에 대한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새로운 시간 속에는 새로운 마음과 꿈을 잉태하여야한다.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했다. 병아리가 부화하기위해서는 먼저 안에서부터 자기 부리로 알껍데기를 ‘톡톡' 깨야 밖에서 어미닭이 같이 ‘탁탁‘(啄)쪼아 주는 동기(同機)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귀중한 옥합이라도 깨어지지 않으면 어찌 향유가 흘러나오겠는가. 솔개는 새들 중 수명이 매우 길어 80년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선택의 과정이 중요하다. 솔개가 40년을 살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달아 무뎌지고, 날개는 무거워져 날기도 힘든 볼품없는 모습이 된다. 이제 40년에 안주할것인가. 아니면 80년에 도전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생명을 위해서는 생명을 거는 선택이 믿음이다. 드디어 솔개는 높은 바위에 올라 자기 부리로 바위를 마구 쪼아댄다. 낡고 구부러진 부리가 다 부러질 때까지 쪼고 또 쪼아야 한다. 새로 난 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다 뽑아 내야한다. 그리고 낡은 깃털을 하나씩 다 뽑아 내야한다. 그렇게 생사를 건 130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40년의 거듭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지금 한국 교회는 정체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제 스스로 성장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뼈를 깎는 경장과 목회갱신이 절실한 변곡점에 서있다.

현대교인들은 화려한 건물이나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다. 한 사람의 아픔과 필요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행동과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한사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두 사람의 영혼을 주님이 맡기실 리가 없다. 곳곳에서 성도들이 비틀거리고, 여기저기서 교회의 서까래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합리적 변명과 외식으로 안팎의 자조적인 빈축을 사고 있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고난을 비껴서 어느 쪽이 나에게 더 이득이 될 지만을 계산하고 있다면, 민초들의 경멸에 찬 눈빛을 떠올릴 일이다. 길들여진 말은 달아나지 않는다. 목회는 목사가 죽어야 되어지는 하나님의 일이다. 나에게 익숙한 물맷돌을 붙잡아야한다. 생명신학은 이제 성도와 교회의 영적 시스템(system)과 툴(tool)을 장착해야한다. 목사의 무릎과 성도의 눈물이 생명신학의 줄탁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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