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은혜가 화음된 나의 ‘인생노래’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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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은혜가 화음된 나의 ‘인생노래’ 들려주고 싶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3.11.27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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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간 가수 ‘수와진’의 안상진

신학교에 간 가수 ‘수와진’의 안상진

고난 덕분에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신학교까지 와서 감사하다는 안상진 전도사는 백석신학교처럼 좋은 학교에 더 많은 사람이 와서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며 말한다. ‘정리의 달인’으로 소문난 늦깎이 신학생 안상진 전도사는 다른 학우들과 정리한 것도 나누고 점심 도시락도 나누면서 학교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았던 야곱 못지않게 승부욕이 ‘장난이 아닌’ 쌍둥이 동생이 여기 또 있다. 형보다 먼저 세상 구경하려고 경쟁을 벌이다가 숨이 거의 끊어진 채로 태어난 그는, 이후 6살 때는 펄펄 끓는 빨래통에 빠져 전신화상을 입고, 8살 때는 기름종이가 얼굴에 붙어 3도 화상, 15살 때에는 30cm 토종 왕지네에 물려 혼수상태, 16살 때에는 더 큰 독사에게 물려 중태, 19살 때에는 땅벌에 37방 쏘여 실신했다 예수님 얼굴 보고 깨어나고, 패싸움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가 하면, 나중에 유명 가수로 뜬 후에는 강도를 당해 식물인간이 될 뻔한 사고를 당하고, 간경변이 나을 만하니 또 4.3cm짜리 폐종양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이 사람. 스스로 ‘파란만장했다’는, 쌍둥이 가수 ‘수와진’의 동생 안상진 씨의 이야기다. 아니, 이제는 ‘안상진 전도사님’이 더 좋겠다. 현재 백석신학교(신학과 2학년)를 다니며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그에게, 고난과 은혜는 그의 인생 노래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화음’이 되었다.

찬양으로 실력 쌓아 가수로 대박
그가 처음 노래를 접한 것은 고 1 사춘기 때. 그를 그토록 사랑했던 할머니와 아버지가 세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분의 오랜 투병생활로 가세는 기울었고 어머니 홀로 네 자녀를 양육해야 했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날도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그에게 어디선가 마음을 적시는 노래가 들려왔다. 그곳은 교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였어요. 그 노래가 너무 좋아 교회당에 처음 들어갔고, 교회에서 혼자 기타를 배우고 찬양을 인도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거죠. 그후 형 상수와 함께 군대 교회에서 찬양을 했는데, 그 당시 유재호 사령관님(유정현 아나운서의 아버지)이 잘한다고 저희 둘을 문선대로 보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둘이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 후에 서울에 올라와 무명가수를 하던 수와진은 명동성당 앞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영하 10도가 넘는 겨울에도 8시간씩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차가운 기타줄에 손가락이 달라붙었지만, 그들의 노래는 행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고생은 됐지만 그때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목도 튼튼해졌고 노래 실력도 많이 쌓았죠. 그러다가 87년에 ‘새벽아침’ 노래가 터진 거죠. 대박이 났어요. 그해 신인상을 받았고요. 그때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구경해서 어디 밥을 못먹으러 갔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교회를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89년도에 꽝, 터졌죠.”

▲ ‘수와진’으로 노래하는 모습. 형 안상수만 노래하고 본인은 어려웠던 시절, 종종 쌍둥이의 이점(?)을 살려 형 행세를 하며 행사를 나가기도 했다고.

말기 폐암 낫고 온가족 구원
새해 첫날, 한복차림으로 한강 고수부지를 산책하던 그는 괴한들에게 공격을 받는다. 쇠파이프, 각목, 돌 따위로 머리와 관절 같은 급소만 맞았다. 응급실에서 의사는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고, 엄마는 기절해버렸다. 9시간의 긴 수술 끝에 생명은 건졌다. 그 일로 한강고수 부지에 가로등이 환하게 설치되는 역사(?)가 일어났지만, 그는 오랜 세월 암흑 속을 헤매야 했다.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뇌 조직이 손상돼 늘 분노를 품고 살았다. 자살 하려고 수면제를 먹었지만 눈은 다시 떠졌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불쑥 다리 밖으로 핸들을 틀었지만 차는 추락하지 않고 난간에 달랑달랑 매달렸다. 죽는 것도 맘대로 안됐다.

“그때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좀 시간이 흐른 후에 레스토랑을 열었죠. 잘되더라고요. 그런데 잘되면 잘될수록 술을 더 많이 먹게 되고 나중에 간경변에 걸렸어요. 다시 교회를 찾았죠. 하나님께 내 좀 살게 해주세요, 간구하고, 그래서 나았어요. 새로 앨범도 내고 바빠지기 시작하니까 또 교회를 멀리 하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또 한방 제대로 맞았죠.”

이번엔 암이었다. 2011년 11월, 베트남 아이들 심장병 수술 때문에 병원을 찾았던 그는 마침 배가 아파 검사를 받았다. 생각도 못했던 진단이 나왔다. 폐암말기.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눈앞이 아득했다. 주변에서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지만 정작 그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흘렸다.

한 3일을 하나님께 대들고 나니,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고1 때, 교회당으로 그를 이끌었던 찬송가가 떠올랐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그 가사가 그의 인생이었다.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정말 그랬다. 그러나 이 슬픈 노래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을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밝은 빛을 보도다.’ 다윗처럼 침상을 적시며 회개를 노래하는 밤이 깊어졌다. 점점 빛이 강해졌다.

“수술 날짜가 되어 병원에 갔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수술 하려고 배를 열었는데 암이 없어졌어요. 의사도 이런 일은 처음 봤다고 놀라더군요. 그때 어머니도 ‘이거구나’ 하고, 깨달으시더라고요. 사실 우리 집이 원래 불교집안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일로 온 가족이 하나님을 영접했어요. 지금 어머니는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으세요. 또 처가댁도 불교였는데 제가 한 3분의 1은 현재 포섭했어요. 저도 그 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요.”

올 A플러스 받은 ‘정리의 달인’
33년만에 공부를 하려니, 사실 걱정이 앞섰다. 밤낮을 거꾸로 살며 노래만 불렀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역시 처음 3개월은 힘들었다. 난생 처음 써보는 리포트 때문에 끙끙대며 첫 학기를 마쳤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올 A플러스’가 찍힌 성적표 앞에서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2학년이 되자 슬슬 공부하는 재미가 붙었다. 어떤 날은 하루 13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붙박이로 앉아 강의노트를 정리했다.

“아침에 제 아이들이 책상 앞에 있는 저를 보고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아직도 제가 앉아있거든요. 아이들이 놀래는 거죠. 한 1년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더니, 얘들도 달라졌어요. 텔레비전도 예전처럼 안보고, 아빠처럼 책상에 앉아있기 시작하더라고요. 성적도 올랐어요. 그것도 감사하죠.”

덕분에 그에겐 ‘정리의 달인’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혼자만 A학점 받겠다는 욕심은 아니다. 잘 정리한 강의 노트를 다른 학우들에게도 나눠준다. 물론,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가 나누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처음에는 점심을 사먹었다. 어느 날 점심을 굶는 학우들이 보였다. 그날부터 아내에게 부탁해서 4-5인분의 도시락을 쌌다.

“밥 안먹고 있는 사람들은 다 와라, 그래서 같이 먹어요.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요. 또 어려운 일을 당한 학우가 있으면 같이 도와주기도 하고요. 하던 습성인데 그게 어디 가겠어요?”

하던 습성이 어디 가요?
맞다. ‘하던 습성’이 그에겐 있다. 인터넷 검색에 ‘수와진’을 치면, 이런 말들이 따라 온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기탁’ ‘자선공연’ ‘심장병 아동 돕기’ 등등.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선공연을 했고, 적지 않은 액수를 성금으로 기탁했으며, 800명이 넘는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을 도왔다. 늦깎이 신학생 안상진은, 역시 신학교에 와서도 ‘하던 습성’대로 사랑을 노래한다.

“다 그러셔요. 얘들도 그래요. 아빠 얼굴이 너무 환해졌대요. 악한 기가 하나도 없다네요. 성질도 안내고 너무 선해졌다고요. 전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요(웃음). 마인드가 많이 긍정적이 되었어요. 안 겪었으면 몰라요. 저는 그런 것을 몇 번 겪으니 알죠. 이젠 나를 깨닫고 내 죄를 깨닫고 감사한 거죠. 그동안 정말 파란만장했죠. 그게 또 연단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보내신 신호를 못 알아보고 고난을 자초한 거니까요.”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자기처럼 ‘하나님의 싸인’을 거부하며 고생을 자초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진작 하나님 안에 있었으면 이렇게 편한 것을, 왜 그 고생을 했던가. “백석대학교가 교수님도 최고고 제일 좋은 대학이니 이리 공부하러 많이 오시라”고 틈만 나면 학교 자랑에 바쁜 그는 이제 하나님의 다음 코스가 궁금하다. 그러나 답은 벌써 나와 있단다. 어떤 길로 인도하시더라도, 이젠 순종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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