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에서 복음으로, 두 광인과 함께한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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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에서 복음으로, 두 광인과 함께한 30년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11.1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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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캘빈(Jhon Calvin) 생가 앞에서 옥한흠 목사와 함께한 유승관 목사.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일념으로 황량한 영일만 모래밭에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오늘의 경제 한국을 있게 만든 철강왕 박태준.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목양일념(牧羊一念)으로 영적 황무지에 제자훈련의 씨를 뿌려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에 건강한 영향력을 미친 설교왕 옥한흠.

한 사람은 철강에 미치고, 또 한 사람은 복음에 미쳐 마치 활화산처럼 뜨거운 광인(狂人)의 삶을 살다 갔다. 그리고 그 두 지도자 사이에는 그들을 섬기며 뒤 따랐던 유승관 목사가 있었다.

한국 교회의 큰 별로 남은 고 옥한흠 목사,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 기업을 이끌었던 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삶과 신앙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직장과 교회에서 두 거목을 섬기며 멘티로 뒤따르던 저자 유승관 목사의 간증집 ‘두 광인 이야기(생명의말씀사)’다.

유승관 목사는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끝에 평신도 사역자에서 늦깎이 목회자이자 옥한흠 목사의 30년 영적제자로, 또 그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박태준의 그림자로 20년 간 포스코맨으로 살아왔다. ‘두 광인 이야기’는 그가 지켜봐 온 옥한흠 목사와 박태준 회장의 숨겨진 감동 스토리가 담겨 있다. 특히 두 인물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앙과 삶을 가까이에서 본 이야기라 더 흥미롭다. 게다가 옥한흠 목사의 목회철학, 인간적 고뇌 뿐만 아니라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철강신화’를 이뤄잰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을 한 책에 담았다.

서로 상관없는 길을 갔을 법한 두 사람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두 인물은 ‘광인(狂人)’이었다. 이들의 뒤를 따랐던 유승관 목사는 사랑의교회 창립 초기부터 31년 간 평신도 사역자로 섬겼다. 옥한흠 목사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며 그의 제자로 살아온 유 목사는 신앙인의 길을 옥 목사로부터 배웠다. 또 옥 목사처럼 살고자 분투했다. 부르심이 있는 곳에는 어느 곳이든 주저 없이 몸을 던졌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큰 바위 얼굴처럼 보고 배울 스승, 옥한흠 목사가 언제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외침으로 그치지 않았던 옥한흠 목사의 열정, 복음을 위한 그의 투신을 늘 목도했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의 세계화를 목표로 뛰던 차에 옥한흠 목사의 권유에 따라 유 목사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목회자의 길이 힘들었던 유 목사는 옥 목사가 소천하기 1년 전쯤, 사역을 그만 두려고 했다. 하지만 옥 목사의 “죽을 때까지 해!”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목회에 전념했다.

유 목사는 “이 이야기를 책에 담는 것에 있어 많이 망설였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는 데 따른 부담감과 이야기와 연관된 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옥 목사님이 일생을 바쳤던 제자훈련의 아름다운 영성과 유산을 계속 유지해 나가길 원하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 포스코맨 시절, 유승관 목사가 박태준 회장과 방콕 수상 시장을 돌아보고 있다(1992년 12월).
또 이 책에는 그가 포스코 사장실에서 근무하며 20년 간 곁에서 지켜본 포스코 박태준 회장과의 만남, 그리고 기업과 간부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던 경험도 책에 담겨있다.

철강왕 박 회장의 업적을 소개하는 게 아니다. 박태준 회장의 삶 가운데 존재했던 믿음, ‘크리스천 박태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열정과 헌신을 보며 저런 분이 예수를 믿게 된다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태준 회장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신입사원 유승관 목사는 1977년 포스코에 입사한 날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1992년 12월, 박 회장과 함께 방콕 수상시장을 돌며 떨리는 마음으로 ‘사영리’를 전한다. 그리고 생의 벼랑 끝에 선 박 회장에게 친필로 눈물의 전도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 열매는 19년 만에 맺혔다.

그는 “포스코 신우회에서 세 가지 기도제목 중 하나를 ‘박태준 회장과 간부들의 복음화’로 정했었다. 신우회 회보에도 기도제목을 올려 매일 합심으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박 회장은 힘든 시기를 만나 바닥까지 떨어지는 광야 체험을 지나고 있었고 그때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다”고 설명했다.

유 목사는 “결국 박 회장은 나중에 예수를 믿고 크리스천의 삶을 살다가 소천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박태준 회장의 뒤에는 언제나 중보의 손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포스코맨 시절 그는 포스코 복음화를 위해 ‘포스코 성경연구회’, ‘포철기독인연합회’, ‘포스코패밀리 기독선교회’ 등 ‘포항성시화운동’까지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청춘의 한편을 포스코(POSCO)에서 또 다른 한편은 사랑의교회에서 오롯이 불태웠던 유승관 목사. 걸출한 두 인물, 박태준과 옥한흠이라는 거인을 동시에 모셨던 유일한 멘티. 이들과 함께 보낸 30여 년의 세월을 한 권의 책에 담기란 실로 무리한 도전이었지만, 용광로처럼 뜨거운 사명을 불태우며 두 광인(狂人)이 남긴 시대와 신앙의 유산을 후대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애쓰는 그 또한 한 명의 광인(狂人)이다.

이제 그는 두 광인(狂人) 없이 홀로 제자훈련의 영성과 직업의 전문성을 가지고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Here & Now)을 땅끝으로 여겨 총체적 선교의 삶을 살도록 돕는 일에 집중하고 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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