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의 빛바랜 영광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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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키의 빛바랜 영광 이스탄불
  • 승인 2003.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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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성지순례여행사가 마련한 성경지역 답사 일정과 달리 고영민박사의 성지여행은, 성경주제를 따라 코스를 연결하고 있다. 1차 답사는 ꡐ바울부터 종교개혁ꡑ을 주제로 26회에 걸쳐 본보에 게재했으며, 이번 27회 부터 시작하는 2차 답사는 ꡐ노아부터 바울까지ꡑ를 주제로 게재할 예정이다.

지난달부터 보름간 빡빡한 일정 속에서 진행된 ꡐ고영민의 2차 성지 여행기ꡑ를 지난 회에 이어 게재한다.

2003년 1월 20일, 새벽 기도를 마친 후 서둘러 여행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2년 후에 있게 될 성지 순례를 앞두고 미리 예정된 코스를 둘러보고자 어렵사리 여가 틈을 내었다.

인천 공항에서 만난 기독신학 동문들은 한결같이 기독교 연합 신문에 연재된 성지 답사기를 읽고 성지순례를 나서게 되었노라고 환한 얼굴로 한 마디씩 건넸다. 흐뭇한 마음에 앞서 무거운 짐을 또 하나 더 짊어진 느낌이었다.

이윽고 빈자리 하나없이 271명 전원을 통째로 실은 터키항공 TK 91호는 그 육중한 몸체를 서서히 일으키면서 활주로 위를 쏜살같이 달리더니 곧이어 흰 구름의 품으로 소리없이 안겨 들어갔다.

40여 분을 날아갔을 즈음 창문 저편에서 세기의 건축물 만리장성이 겨울 오후의 화사한 햇빛을 받아 시골의 황토 샛길처럼 북쪽으로 끝없이 뻗어져 가고 있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공간은 점에서 선과 면, 입체로 향한다고 한다면 저 거대한 성곽이 역사 속에 남겨놓은 흔적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역사에서는 당대의 사건이 지니는 의미가 훨씬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언젠가 직접 걸어 본 만리장성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어 수단이 아니라 단지 여행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최고의 관광상품이 되어 있었다.

타슈겐트 상공을 지나자 하늘과 땅은 온통 흰 구름과 흰 눈으로 채워져 눈부신 하얀 빛을 사방으로 퍼치고 있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물체가 살 수 있도록 지으신 이 지구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우셨으면 사시사철 하얀 옷, 초록 옷, 붉은 옷, 노란 옷들로 갈아 입히시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홀로 즐기려 하시는 것일까?

우리를 태운 에어버스는 서쪽으로 기울어지려는 태양을 속히 뒤따라 붙잡으려는 듯 전 속력으로 달려보았지만 어느새 어둠의 장막은 서서히 중앙 아시아의 시각적인 모든 물체들을 빈틈없이 덮기 시작했고 피곤에 몰린 승객들은 하나 둘씩 잠의 늪 속으로 깊숙히 빠져 들어갔다.

그렇다! 저 칠흙같은 어둠의 궁창 아래에는 혼돈과 공허의 수면 위로 떠오른 태초의 빛을 처음으로 보았던 땅과 사람들이 있었다. 세계 문명의 싹을 띄웠던 최초 요람이자 위대한 구속사의 드라마가 펼쳐졌던 에덴 동산, 그 원시 계시의 현장이 분명히 저편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불두덩처럼 뜨거워진 순례자의 가슴을 안고 한때 문명의 주춧돌을 세우고 문화의 불꽃을 지폈던 옛 터전과 들판을 찾아 그 곳에서 뿜어 오는 역사의 거친 숨결과 끈질기게 이어온 생명의 힘찬 맥박 소리를 듣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11시간의 지루한 비행 끝에 도착한 이스탄불 아타 투르크 공항은 지난 여름에 들렸을 때처럼 여전히 분주한 시간 속을 정신없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터키에 올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페이도스(pathos)가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듯한 아늑함과 포근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수수께기 같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 한민족의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러시아의 중서부에 있는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왔다는 설과 지금의 터키 동북부에 있는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왔다는 설이다.

이 두 설을 합쳐보면 한 민족의 조상들은 일단 지금의 쿠르드 족들이 모여 사는 티크리스와 유브라데 강이 만나는 어느 지역(에덴동산?)에서 살다가 코카서스 산맥을 넘은 후에 또다시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 중앙 아시아를 거쳐 한반도로 옮겨져 왔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의 주변 언저리에 있는 터어키는 어쩌면 중앙 아시아에서 함께 더불어 살면서 우리 민족과는 밀접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었을까?

이번 여행에서 아라랏 산 입구에 있는 도베야짓 마을 입구에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한복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맷돌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새긴 거대한 동상을 본 일이 있다.

그것이 한국의 시골 어머니와 너무나 흡사해서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몇 번이고 셔터를 눌러 대었다. 터어키에 오래 거주해 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터어키인들의 심성과 문화, 언어적인 바탕이 우리들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닮아 있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동일한 알타이 문화권이 속해 있는 두 민족은 아시아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일구어 가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적 정통성과 민족적 독특성을 유지시켜 오고 있다. 그들이 한국전 때 많은 군인들을 보내 주었다는 것, 월드컵 때 보여 주었던 남다른 애정, 어느 곳엘 가도 한국 사람이라면 일등 국가의 국민인 것처럼 환대하는 것 등은, 무엇인가 이유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암시적인 증거일 것이다.

저 멀리 에게해 수평선이 붉게 물들면서 이스탄불 시내에 있는 사원들에서는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는 아잔의 코란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유럽과 아시아, 과거와 현재, 낮과 밤이 이어져 하나의 예술과 문화와 전통을 빚어내고 있는 터어키 이스탄불, 만일 저 코란 소리가 찬송가 소리로 바꾸어진다면 정녕 이 나라는 다시 한번 오토만 제국의 영광을 찾아 인류의 역사의 살아있는 또 하나의 희망으로 남아 있게 될텐데. / 천안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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