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구원관과 교회관을 바로 잡기 위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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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구원관과 교회관을 바로 잡기 위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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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2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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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 496주년 특별기고 (상) - 왜 종교개혁은 일어나야만 했는가?

▲ 주도홍 교수 백석대신대원 역사신학
종교개혁은 ‘교리의 개혁’
잘못된 구원관과 교회관에
올바른 신앙관 제시

종교개혁자의 생생한 말을 통해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지를 제시하려 한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갑작스러운 회심’을 통해 종교개혁에 참여하였다. 그의 종교개혁 참여 동기를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 헌정사는 잘 말해주고 있다.

당시 추방자 칼빈은 헌정사를 자신의 모국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1535년 8월 23일 스위스의 바젤에서 굳은 심지로 썼다. 26세의 칼빈은 헌정사에서 종교개혁 전야의 상황을 잘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칼빈이 종교개혁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곧 칼빈의 종교개혁 동인을 보여주는데, 동시에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했는지를 인식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물론 칼빈은 특별히 박해 받는 모국 프랑스 개신교도들을 눈앞에 두고(especially for our French countrymen) 이 글을 쓰고 있기에 제한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꼭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시 로마교황청 아래 있는 유럽의 종교적 상황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칼빈이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던 것은 참된 경건(true godliness)과 건전한 교리(sound doctrine)였다. 그렇지만 “우리의 교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의 모든 영광과 능력들 위에 우뚝 솟아야만 한다.” 중세는 분명 두터운 신앙적인 시대였으나 사실은 영적 기아에 시달리고 있었다.

칼빈의 말대로 중세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very many of whom I saw to be hungering and thirsting for Christ)”있었지만, 문제는 “그리스도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는 극소수(very few)에 불과했다.” 이러한 영적 가뭄이 새로운 시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불경건한 사람들이(the ungodly) 크게 득세를 해서 그리스도의 진리가 추방되고 흩어져서, 비록 소멸까지는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가려져 있고 묻혀 있으며 빛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 칼빈은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야만 했다. 사실 당시 각국의 왕은 정치적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종교적 지도자였기에 하나님의 종으로서(a minister of God) 시대의 소명에 충실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에 칼빈은 프랑수아에게 왕의 책무를 세 가지로 상기시켰다. 첫째,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 것인지, 둘째,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가 영예로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셋째, 어떻게 우리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을 지이다.

만약 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마땅한 “왕의 법도”를 행하지 않는다면 “산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not kingly rule but brigandage)이라고 칼빈은 호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왕국은 하나님의 홀(God’s scepter), 곧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통치를 받아야 하는데, 당시 칼빈의 눈에 예언과 묵시가 없어 백성이 흩어지며, 백성이 방자히 행하고 있었다. 칼빈은 믿음의 규칙(the rule of faith)에 의해 볼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확실히 인식해야 했다.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옷을 입기 위해 우리는 미덕이 전혀 없는 벌거숭이이며, 하나님에 의해 채움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아무 선한 것이 없으며, 그분에 의해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는 죄의 종들이며, 그분에 의해 비췸을 얻기 위해 눈먼 자이며, 그분에 의해 교정을 받기 위해 절름발이이며, 그분에 의해 지탱하기 위해 약한 자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믿음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임을 칼빈은 확신했다. 그렇지만, 중세교회 지도자들은 모든 찬송, 영광, 덕, 의, 그리고 지혜가 하나님에게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니 그들 자신이 가로채고 있었다. “교황청의 수위성과 거룩한 어머니 되시는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여 손가락을 드는 자만 없다면”, 그 어떤 명백한 불경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혀진다 해도 그들에게는 별로 고통이 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 어떤 증명도 하지 못하면서, 미사, 연옥, 성지순례 따위의 별 의미 없는 것들을 위해서는 모질고 독한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저희의 신은 배요(빌 3:19) 저희 부엌이 저희 종교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모든 사람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진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보존하거나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기적에 의해 자기들의 신앙을 확증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기적 신앙 내지는 이적 신앙이 그들의 신앙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오랜 전통과 소위 말하는 거룩한 교구들의 동의가 진리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제시되는 수없이 많은 교회의 제도들, 교회법들, 그리고 교리들은 그 의미를 잃고 있었다. 그들은 보이는 교회와 로마교회의 제도적 가부장제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칼빈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내세웠으며, 교회의 진정한 표식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전파와 성례의 올바른 집행임을 주장하였다. 보이는 교회를 내세웠던 그들에게 교회의 직분은 그들의 명예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하였다. 제후들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교황직을 매수 내지 유지하였으며, 더 나아가 추기경들, 주교들, 수도원장들 그리고 사제들이 그런 식으로 배출되기에 이르렀다. 곧 성직의 매관매직이 당시 교회의 부끄러운 풍경이었다.

이는 칼빈이 당신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한다고 보아서는 안 되는데, 칼빈 역시 이 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도덕이나 비극적 비행에 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의 모든 삶이 그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말입니다. … 그들이 교회라고 주장하는 그것, 바로 그 교리 자체야말로 영혼을 죽이는 도살장이요 교회의 선동자요 파멸자이며 파괴자임을 틀림없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칼빈은 바른 교회를 추구하고자 했지, 인간들의 잘못된 도덕이나 행위를 지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 점은 “다른 사람들은 생활을 말하였지만, 나는 교리를 말한다.”고 했던 종교개혁자 루터(M. Luther, 1483-1546)도 다르지 않았다. 곧 종교개혁은 인간의 잘못된 윤리나 행위를 고쳐보려고 일어난 운동은 아니었다. 물론 잘못된 도덕이나 목회자의 타락이 정당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있어 윤리나 도덕은 진정한 신앙의 열매였다. 좋은 신앙의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마땅히 맺힌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종교개혁은 교리의 개혁이었다.

중세가 깊은 신앙의 시대였으면서도 우울했던 것은 잘못된 구원관과 교회관 때문이었다. 인간의 고행과 선행으로 인해 무서운 연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갈 수 있는데, 여기에 요구되었던 것은 면죄부를 사야만 하는 돈, 물질이었다.

31살이라는 평균수명을 가진 극도의 가난 속에서 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액의 돈이든지, 십자군전쟁에 나가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어두운 먹구름이 그들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허례의식과 사치로 가득한 로마교황청의 무거운 요구는 유럽 현지교회들의 절망 섞인 한숨이었다.

로마교황청은 유대인의 민족적 배신자 삭개오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개혁은 기치를 들어야 했는데, 바른 구원관과 교회관의 확립이었다. 이를 위해 종교개혁자들은 다른 모든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을 훨훨 벗어버리고, 진리의 절대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굳건히 붙들어야만 했다. 오직 말씀의 진리 위에서 종교개혁은 그 길을 가야만 했는데,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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