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무너진 바벨탑을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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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무너진 바벨탑을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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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9.1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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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그루의 해바라기꽃이 소생언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백설희는 해바라기 옆에 서서 미소를 지으면서 선린을 향하여 소리쳤다.

“선린 오빠, 빨리 와요!”

종달새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선린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의 다리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느라 지쳐있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면서 해바라기밭에 거의 다라랐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희를 꼭 찾을 거야!

선린의 마음이 급한 것과 달리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설희가 있던 자리에 설희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워 하며 그를 바라보고 소리쳤다.

“제발 내 딸을 찾아주세요!”

그 목소리가 소생언에 있는 해바라기들을 흔들어 놓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까치가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선린은 이상한 꿈에서 깨어났다.

선린은 매년 4월이 되면 비룡산을 찾아왔다. 그가 비룡산을 찾을 때마다 그가 15년간 어린 시절에 살았던 그의 집터를 찾아보곤 하였다. 그가 살던 집터 자리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선린은 소생언으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생각했다.

‘백설희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살고 있을까?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설희를 만난 것이 나의 운명인가? 아니면 기도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만난 우연일 뿐인가?’

그는 운명을 부인하고 싶지만 설희와의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그 운명의 수레바퀴를 부지런히 따라가고 싶었다. 아니, 운명의 길에 앞서서 가고 싶었다.

백진승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지성의 힘으로 행복이란 탑과 성공이란 탑을 쌓으려고 하였다. 그의 지성은 그의 가슴속에 있는 감정에게 명령하며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였다.

한편 정희선은 가슴속에 존재하는 믿음을 가지고 행복이나 성공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것을 인정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싶었다.

백진승은 가난한 농부의 집 4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너무나 가난하여 머리가 좋은 백진승만 대학까지 가르쳤고 나머지 동생들은 모두 초등학교만 졸업하는데 그쳤다. 그는 성공해서 동생들이 자기를 위해서 희생한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백진승은 눈부시게 성공했다. 모든 동창들이 그를 부러워했다. 그는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았고 광활한 땅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는 법관으로, 변호사로,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그의 동생이 운영하던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면서 연대보증을 선 그가 책임을 지게 됐다. 실패를 모르고 성공의 가도를 달리기만 하던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가 실패했다는 소문은 날개단듯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귀에 전해졌다. 그를 우러러 보던 시선들은 이제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캄캄한 밤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머릿속은 진공상태처럼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성의 소리도 이제는 침묵하고 말았다. 그는 캄캄한 절벽 앞에서 희망을 잃고 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몸부림을 치면서 지금까지 그를 성공의 길로 인도하였던 지성의 소리를 듣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고요한 정적만이 그를 감돌고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 그에게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잠시후 그의 딸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아! 나는 저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물은 가까운 곳을 적시머 흘러가고 빛도 가까운 곳부터 먼저 비춘다는 이치를 나는 왜 몰랐을까?”

백진승은 짐승이라도 된것처럼 울부짖으며 무엇인가 결심한 것을 써내려갔다.

백진승이 결혼한 후 살림집은 그가 마련했지만 모든 생활비는 그의 부인 정희선이 책임을 졌다. 정희선은 그의 남편이 그의 동생들에 대한 편집증적인 성격에 대하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 언제까지 동생들을 뒷바라지 할겁니까?”
“동생들은 나 때문에 배우는 것을 희생하였소. 동생들의 희생으로 내가 성공을 했으니 그애들이 자립할 때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만 해요.”
“동생들도 다 성인이고 가정을 이루었는데 언제까지 도와주어야 됩니까?”
“그런 것조차 당신은 이해를 못합니까?”

밤 11시, 정희선은 오늘 따라 집안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매일 10시 이전이면 그의 남편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습관을 어겼기 때문이다. 딸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는 남편의 서재로 들어갔다. 남편의 책상위에는 흰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봉투를 손에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봉투 안에는 있는 것을 꺼내었다.

“희선씨에게! 내가 처음 희선씨를 만났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기분이었습니다. 희선씨는 나를 행복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도전할 용기까지 심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대를 만난 것이 나의 지성의 승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희선씨는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로지 지성의 힘으로만 살아온 내가 희선씨의 말은 저에게 낯설기만 했습니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 우리의 삶은 물과 기름과도 같이 서로 융합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희선씨를 나의 지성의 성으로 옮기기를 원했고 희선씨는 나를 영적인 삶으로 옮기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주장만 할 뿐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평생 동안 지켜온 나의 고정관념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나의 지적 교만함이 나의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가치 있게 지켜주었던 것들이 나의 모든 가치를 송두리채 뺐어갔습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아니 희선씨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할 역할은 여기에서 끝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딸 설희를 잘 부탁합니다. 나를 찾지 말아 주십시요.”

“아니, 이럴수가!”

그가 남편에게 갖고 있었던 실낱같은 희망조차 산산조각 난 느낌이었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온 힘이 몸에서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향해 무릅을 꿇었다.

“주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나의 죄를 도말하시고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는 머리를 들어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받으며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두려움 속에서 소망의 빛을 찾으려고 부르짖었다. 이제 그는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는 연민의 정이 휘몰아 쳤다.

“오, 주님. 나의 남편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의 생명 만큼은 남겨주소서! 나는 주님의 은혜를 압니다. 이제 제가 남편 대신 주님 앞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남편은 주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대로는 아니 되옵니다. 그에게 주의 영을 부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주님을 고백하게 하시고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를 만나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은 주님의 특별한 예정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백진승은 그가 의존하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그의 영혼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상처가 너무 커서 세상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만 적당한 곳을 찾을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처와 단 한번 다녀간 일이 있는 비룡산 삼일원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부인이 그를 위해서 서고 벽에 걸어 준 십자가상이 그의 머리에 계속해서 떠올랐다. 늘 왜면하기만 하였던 그 십자가상이 자기의 뒤를 따라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무의식 중에 소리쳤다.

“주여, 따라오지 마시고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선린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발신인이 720사업추진본부장 명의였다. 선린은 친구들의 편지가 아니면 올 편지가 없었다.

“귀하가 관리하는 분묘는 국책사업으로 새행하는 720사업추진부지 내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지정한 기한 내에 720사업추진본부에 분묘이전계획서를 제출해주기 바랍니다. 만일 위 기한이 경과 시에는 720사업시행계회에 따라서 처리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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