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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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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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9.0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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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찬 목사 (백석신학교 학장)

혼선은 언행이 앞뒤가 안 맞아 종잡을 수 없음을 뜻하고, 의는 인간이 행해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한다. 과거 어느 때 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명확히 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반면 옳고 그름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죄로 고발했고, 이석기 의원은 “국정원의 조작이요, 민주주의 탄압”이라며 촛불시위까지 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며, 국정원의 쇄신을 요구하고 있고, 국정원은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혼선을 빚는 언행과 상반된 언론보도를 접하며 양쪽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혼미해지거나 혼선에 빠져서는 안된다. 혼선은 갈 길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라인홀드 니버 교수는 그의 저서 ‘빛의 자녀들과 어두움의 자녀들’이라는 책에서 “어두움의 자녀들은 혼선케 하는 자녀들이요, 빛의 자녀들은 혼선을 바로잡아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자녀들”이라고 했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정오에 등불을 들고 아덴의 도시 한복판을 걸으며 “캄캄하도다. 캄캄하도다. 뒤죽박죽이구나. 뒤죽박죽이구나”라며 외쳤던 것 같이 우리의 시대도 밝은 세상에 살면서 판단력과 의의 눈이 어두워져 캄캄하고 뒤죽박죽이 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혼미케 하고 혼잡해 혼선을 빚은 일은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예수님 당대에도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했던 오실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헷갈려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7:19-20)하고 물었다. 제자들 역시 예수께서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하시니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마8:27)하고 주님의 능력에 혼선을 빚었다.

그래서 주님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눅9:20) 하고 혼선의 정체성을 가진 제자들에게 ‘의’의 정체성을 정립시켜 주신 것이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눅9:18)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눅9:19)라고 답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눅9:20)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며 답했다. 예수님은 그의 고백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혼선된 그리스도에 대한 정체성을 정립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혼선이 오면 이단이 되고, 그리스도 정체성이 바르면 정통이 된다. 오늘날 누가 애국자이며, 나라를 지키고 길이 보전할 자인지 바로 판단하는 의인이 필요한 시대이다. 혼선은 방황하다가 그릇된 길을 가지만, 의인은 길의 정도를 찾아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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