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에 실린 복음과 선교소식
상태바
엽서에 실린 복음과 선교소식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08.20 2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100년 전 엽서 81점 전시하는 ‘희귀선교엽서전’

▲ 대구 톰스 선교사의 친필 엽서(1910년 1월 11일, 흑백사진, 가로 138mm 세로 87mm).

한국의 정서 담고 일제에 굴하지 않았던 파란눈 선교사의 엽서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후 보내진 엽서 81장 그대로 보존•전시

▲ 크리스마스 실 엽서(1930년대, 셔우드 홀 발행, 칼라그림, 가로 90mm 세로 140mm).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관장:한동인)이 복음과 선교의 소식을 담긴 100여 년 전의 엽서를 전시한다. 한국의 근대기, 일제강점기 등 당시의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엽서만 81장. 엽서의 이미지, 엽서에 적힌 편지의 내용 등 엽서들에는 백년 전 한국의 복음과 선교 소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엽서는 한자로 ‘葉書’다. 입사귀 ‘엽’자를 쓴다. 잎사귀는 겉으로 드러나 있다. 꽃이나 열매에 비해 잎사귀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잎에는 푸르름이 주는 생기와 생명력이 가득하다. 엽서도 마찬가지. 엽서는 봉투 없이 보내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엽서로 전하는 소식은 대개 안부를 묻거나 간단한 내용들. 다소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내용이 없어도 엽서를 받는 사람에게는 엽서에 담긴 풍경과 보내는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특별한 것이 된다.

박물관 부관장 이덕주 교수(감신대)는 “엽서에는 즐거운 추억만이 아니라 아픈 역사도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 제작된 사진엽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일본총독부에서 조선의 풍경과 건축물을 담은 엽서들은 일본에 의해 조선이 근대화되고 있음을 드러냈고, 반면 조선의 풍속을 담은 엽서는 전근대적인 조선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을 사진 엽서 소재로 삼는 경우는 조선 사회의 전근대성을 부각시켜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 교수는 “사진엽서에 식민정책의 선전과 그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매체로서 역할이 주어져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교 엽서의 경우는 다르다. 선교엽서는 주로 선교사들에 의해 제작됐다. 선교사들이 제작한 엽서에는 힘이 아닌 사랑으로 한국 선교를 감당한 선교사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 그 안에는 한국인들의 신앙과 정서, 민족운동, 교육, 문화가 담겨져 있다.

1930년대 가난한 사람들의 결핵 치료를 위해 발행한 의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의 ‘크리스마스실 엽서’에는 그의 한국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결핵으로 사망하는 한국인들을 안타깝게 여긴 홀 의사는 해주 구세병원에 결핵 전문 요양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실을 우표와 엽서 형태로 제작, 발행해 가난한 결핵 환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실에는 눈 덮인 아름다운 한국의 풍경, 제기차기하는 아이들, 색동옷을 입고 찬송하는 아이들의 모습 등 서양인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한국을 담았다. 특히 이 엽서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강화되던 시기에 제작됐다. 홀 의사는 일본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서양연호를 고집하며 일제의 정책에 정면 거부했다.

월남 이상재와 해석 손정도와 같은 민족지도자들의 모습을 담은 엽서도 있다. 독립협회를 창설하고 YMCA 총무, 신간회 회장을 역임한 이상재는 항일 민족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상재 선생의 근영 엽서가 제작된 시기는 1920년대 말로 일제 식민통치가 강화되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진행된 이상재 선생의 장례식에는 10만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민족의 큰 별을 잃은 민중의 아픔과 이상재 선생의 결연한 독립의지를 엽서에 그대로 담아 제작됐다.

손정도 목사의 엽서는 평양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던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손 목사가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의원장 의원으로 활동하기 훨씬 이전의 모습이지만 대표적인 민족지도자 중 하나인 손정도 목사가 담긴 엽서가 유통됐다는 사실만으로 깨어 있는 조선인의 정신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 김은호의 「부활 후」 엽서(1920년대, 흑백사진, 가로 142mm 세로 90mm).

김은호 화백의 ‘부활 후’는 1924년 조선미술박람회에서 3등상을 받은 작품이다. 부활한 예수와 함께 좌우에 베드로와 야고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그렸다. 이는 3.1운동 이후 민족의 암울한 시기에 독립을 향한 민족의 ‘부활 소망’을 담은 것으로 기독교 문화 운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1953년 제작된 언더우드의 성탄엽서에는 한국전쟁 당시 참혹함 속에서도 교회와 마을, 들판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모습은 전근대적이거나 야만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문화를 지녔고 열정적인 신앙과 나라를 사랑하는 민족의 모습이 엽서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세브란스 의전교수이자 한국인 간호원 양성에 큰 공을 세운 허스트(Hirst. Jess Walson)가 보낸 엽서에는 개인소식과 함께 1910년 12월에 봉헌된 남문밖교회의 소식이 담겨있다. 엽서 전면에 담긴 남문밖교회의 모습은 고궁을 옮겨다 지은 것으로 고즈넉한 한국 전통 건물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 남문밖교회, 허스트 친필 엽서(1911년 2월 9일, 경성암전사진관 인쇄, 흑백사진, 가로 140mm 88mm).

이외에도 이름 모를 전도자 가족을 담은 엽서, 이화학당에서 바라 본 덕수궁, 강화 성공회 선교부 엽서, 개성중고등학교 시간표, 평양 소재 감리교 학교 연합 운동회 풍경 등 다양한 엽서들이 있다.

전시기간은 올해 12월 31일까지며 경기도 이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매 주일, 추석은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