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현재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받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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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현재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받는’ 행위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3.08.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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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노동관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평화누리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참여하는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노동하는 그리스도인' 연속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하나님의 노동은 인간의 존재이유와 정의에 대한 답변의 핵심
성경은 착취와 억압 반대하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쉼 보장

경제적 위기 때문일까. 실업률이 높아졌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50~70%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도 지속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정규직 또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임금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노동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기보다는 노동에 대해 거부감이나 혐오감을 갖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노동에 대한 생각과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 최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원장:김형원 목사)가 평화누리와 함께 ‘노동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참여하는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연속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일(노동)하심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 느헤미야 연구위원 김근주 박사는 “사람이 노동을 하는 것은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신구약 성경은 창조하신 세상 가운데서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확고하게 증거하고 있다”며 “온 세상을 지으시고 주관하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노동이야말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이며, 정의를 구하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대답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부터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경작하고 지키도록, 노동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라며 “일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이다. 노동은 노동이 가져오는 어떤 열매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며 거룩하다고 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결국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존재를 부정하며,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창조질서에 어긋나고, 사람에게 주신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노동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경작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는 ‘일하다’는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다’, ‘예배하다’의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노동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을 함에 있어서 성경적인 쉼과 삯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노동은 억압과 착취가 된다. 김 박사는 “성경은 노동에 대한 대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쉼은 노동과 반드시 결합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며 “노동자에게 삯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 자본과 자본으로 형성되는 제물만이 삶의 안정성을 확보해준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쉴 새 없이 노동하도록 내모는 지배자와 권력자들의 행동은 성경에 반하는 억압과 착취가 될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노동은 사회적으로 실패하거나 낮은 계층에 속한 이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며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노동자로 불리는 것을 꺼려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노동하는 우리 이웃들과 소통하는 교회의 노력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참된 노동은 예수의 제자됨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도 다양한 직업들이 있었고, 예수님 또한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직업을 ‘목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석민 박사는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마가는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목수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소개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조 박사는 “요한복음에 소개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된 인간으로 인간적인 삶의 조건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사셨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물론 하나님 나라를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선포하시는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자신의 본래 직업인 목수를 일은 하지는 않으셨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노동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했을까. 임금노동자들이 고용주에게 품삯을 받은 것이 당연한 권리임을 분명히 선언하셨으며, 노동하는 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쉼을 보장하셨다.

조 박사는 “예수님은 당시 노동자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권리, 곧 노동의 대가로 당연히 받아야 할 품삯과 노동에 따른 쉼을 역설하시며 노동자들을 옹호하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음서는 노동이 하나님 나라라는 목표와 공동체의 경제상황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불안과 걱정을 위한 노동은 복음서가 가르치는 노동의 원칙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추수 노동자로 사는 것, 예수의 제자됨이 노동을 대신하는 새로운 노동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 노동의 신학과 윤리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위임 혹은 문화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동춘 박사는 “노동은 인간이 자연을 경작하고, 다스림을 통해 역사와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총체적인 활동”이라며 “노동의 위임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에 개입하라는 요구이며,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것을 책임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특히 “노동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발생된 형벌과 저주라고 보는 신학적 오해를 교정해야 한다”며 “노동은 죄의 저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은총 아래에 있으며, 죄의 억제와 잠재력의 발현(창조적 노동)과 같은 신적 은혜의 영역 안에 있다”고 피력했다.

김 박사는 노동은 그 행위를 통해 이웃에게 선을 제공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특정 ‘직업’에만 하나님의 소명이 있지 않고, 주님은 모든 직업을 통해 우리를 부르신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직업과 기업에서의 그리스도인의 노동윤리에 대해 설명한 그는 자본가 중심의 노동관과 같은 편향된 노동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인에게 노동의 신실성을 요구하는 청지기적 노동관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박사는 “청지기 윤리관은 마치 인간이 노동환경에서 상당한 자율성과 선택의 융통성이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수 있는 한계를 가질 수 있지만 일터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듯이 일하도록 도전을 준다”고 설명했다.

인권적 차원의 노동윤리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성경은 일용 노동자들(품군)에게 정당한 임금을 체납하거나 그들을 학대하는 것을 하나님의 정의에 반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노동자는 성경계시의 중심이다. 노동자에 대한 바른 대우는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몫이며, 권리의 문제”라고 피력했다.

김 박사는 “한국 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이 노동의 착취와 억눌림으로부터 신음하지 않도록,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성과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비인간화된 노동구조를 대행할 새로운 대안을 창출해야 한다”며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사회적 시장경제 등 대안적 노동사회 창출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느헤미야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하는 그리스도인’ 연속세미나는 오는 9월 9일 ‘서신서로 읽는 노동’(권연경 박사), 10월 14일 ‘교회사에서 본 노동’(배덕만 박사), 11월 11일 ‘종합세미나’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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