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통일선언의 핵심은 '인도주의와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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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통일선언의 핵심은 '인도주의와 비핵화'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3.07.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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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정전협정 60주년, 평화를 말한다 ④인도주의와 민간교류, 또 다른 통일의 끈(하)

1980년대 이후 세계 교회의 관심 쏠리면서 북한 기독교도 변화
남북관계 경색에도 대북지원 강행하는 것은 ‘통일운동’의 일환

이른바 ‘88선언’으로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1988년 2월 29일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37회 총회에서 총대들의 기립박수 속에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 선언은 민족분단의 현실 속에서 통일에 대한 열망보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적개심’만 가득했던 남한 사회의 모습을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이라는 내용에서는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왔던 일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분단이 동서 냉전체제의 대립이 빚은 구조적 죄악의 결과이며 이로 인해 ‘네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를 범했다는 것. 또 한국 교회가 민족분단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침묵했고, 면면히 이어져 온 자주적 민족 통일운동의 흐름도 외면했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분단을 정당화하는 죄를 지었으며 이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우상화했다고 회개했다.

지난 2003년 평양 봉수교회에서 열린 8.15기도회 전경. 사진 교회협 자료실.
이러한 죄책 고백과 함께 ‘88선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민족 통일을 위한 한국 교회의 기본원칙을 제시했으며, 이것이 나아가 민간 통일운동의 밑거름이 됐다는 점이다.

‘88선언’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74공동성명의 3대 정신과 더불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보장을 위해 인도주의적 배려와 조치의 시행이 필요하다’는 단서와 ‘통일을 위한 모든 논의 과정에 민족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참여 보장’을 촉구했다. 당시 통일 논의를 독점해온 정부를 향해 △이산가족 상봉 △남북 고향과 친척집 방문 허용 △통일위한 민간기구 활동 보장 △배타주의 제거와 민족동질성 회복 △남북한 경제 및 학술, 예술, 종교의 교류를 요구했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88선언’에 명시된 ‘비핵화’ 요구다. ‘88선언’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남북긴장완화가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과제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쟁상태를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을 체결과 불가침조약을 포함을 촉구했다. ‘평화협정’요구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부수적인 요구로 인해 지금도 국내 보수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핵무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남북한 양측은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사용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는 점이다.

또 ‘88선언’은 해방 후 50년이 되는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하고 평화와 통일을 향한 교회갱신 운동을 전개키로 했다.

1980년대 들어 해외 기독자 모임으로 부각된 ‘통일과제’는 세계교회협의회 도잔소협의회와 한북미교회협의회, 한독교회협의회, 글리온회의 등에서 구체화 되었으며 ‘88선언’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

그리고 88선언은 같은 해 7월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과 함께 민족통일의 과제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논의되는 발판을 만들었고,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1991년 12월 남북의 화해와 불가침, 그리고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것은 이후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선언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의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교회협은 “88선언 이후 국제차원에서도 탈냉전이 일어나면서 역사적인 평화정착의 새 시대를 전망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1988년은 북한에서도 기독교 역사의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세계교회협의회의 북한방문과 세계 교회의 관심은 형식적이나마 북한 기독교의 변화를 가져왔다. 북한과 접촉하던 한국과 서구 기독교인들이 교회 건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1988년 10월과 11월 봉수교회와 천주교 장충성당이 문을 연 것이다.

평양에 건립된 봉수교회는 방문자들에게 예배드릴 장소를 마련해주고 종교의 자유에 대한 외형적인 증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로 인해 세워졌다.

당시 세계교회협의회는 봉수교회 건립을 위해 15만 달러를 지원했고, 그 가운데 3만 달러는 남한 교회가 비밀리에 헌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수교회 건립 이후 1992년에 평양 칠골에 칠골교회가 추가로 세워졌고, 2000년대 들어와서는 러시아 정교회인 정백사원이 건립됐다. 북한 기독교를 대표하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교회 및 세계 교회와 교류하며 민간 교류의 한 축으로 인정받아왔지만 그 이면에는 서구교회로부터 달러와 구호물자를 받아들이는 ‘모금창구’라는 비판도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조그련을 창구로 대북 지원을 시작했다. 88선언이 담고 있는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민간이 통일운동에 동참하면서 각 종교단체와 NGO등의 대북지원은 활발하게 진행됐다. 분단상태에 있더라도 동족이 굶주려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북한 지원은 90년대 중반 북한에 최악의 기근이 닥치면서 민간 전체로 확장됐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기독교 역시 북한에 빵공장과 국수공장을 설립해 지속가능한 지원을 시작했고, NGO단체들은 북한에서 키울 젖염소를 보내거나 옥수수 씨앗, 씨감자 등 일회성 지원을 넘어선 북한 개발 형태로 지원을 확대했다. 보수교회들도 대북지원에 동참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의약품도 전달됐으며, 교회의 재건축과 병원 건립 등 북한 지원은 보다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됐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진보정권기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통일부가 발표한 연도별 대북지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정부가 975억 원, 민간이 782억 원의 대북지원을 전개한데 이어 2002년부터는 정부 지원에 2천억대로 높아졌으며,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에 3천488억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퍼주기식 대북지원’ 논란에 이어 금강산 피격사건 등 악재가 겹치면서 대북지원은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했다. 문제는 정부지원이 2008년 438억 원에서 2012년 23억 원에 그쳤지만 민간의 대북교류도 일체 중단되면서 2008년 725억 원의 민간지원이 지난해 118억 원으로 하락했다.

교회협 등 진보적 기독교단체들은 정부의 대북지원 중단 선언에도 불구하고 해외교회와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해 대북지원을 강행했다. 그 이유는 인도적 대북지원과 민간교류는 통일을 위해 놓쳐서는 안 될 ‘끈’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에큐메니칼포럼 사무국장 채혜원 목사는 “모든 길이 막혀도 인도적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만남의 창구를 계속 열어놓는 이유는 ‘통일운동’을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교회협은 이명박 정부 5년 간 세계교회와 연대를 통해 혹은 에큐메니칼 포럼이나 중국의 애덕기금을 통해 북한 지원을 이어왔다.

채 목사는 “도잔소 회의 이후부터 세계 교회가 남북의 평화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다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반도 문제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대북 인도적 지원을 넘어 지속적 북한 사회개발을 위해 세계적인 연대의 중요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또 오는 10월 열리는 WCC 총회 장소가 한국의 부산으로 확정된 것도 ‘남북 통일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평화 공존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오는 10월 6일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평화열차’가 달리며, 모스크바와 단둥 등 거점지역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캠페인이 전개된다.

채 목사는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이기 때문에 평화열차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다시 교회가 해야 하고 ‘평화열차’가 그 책임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열차를 통한 ‘평화캠페인’이 세계인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라면 한국 내 국민들의 의식 변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대북지원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북한지원을 위한 모금운동만으로는 우리 내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며 대북지원의 중요성과 함께 우리 국민들의 인도주의적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적극적인 교육이나 연수, 기도회 등을 통해 대북지원과 국민들의 의식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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